에너지 인사이드

에너지 빈곤, 제3세계만의 문제일까?

油유지우 2015. 7. 22. 10:00


러닝타임 내내 질주와 추격 장면을 쏟아내며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주인공들이 격투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인류에게 얼마 남지 않은 기름과 물을 차지하기 위해서인데요. 영화의 발단이 되는 에너지 고갈만큼이나 심각한 에너지 문제가 또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 빈곤'이죠. 인류의 해묵은 과제로 자리 잡은 에너지 빈곤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에너지복지 전문가에게 들어보았습니다.



에너지 빈곤층,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에너지 빈곤 개념은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해 영국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국은 겨울철 거실온도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이라 규정합니다.


■ 에너지 빈곤 기준

(에너지 구매비용 ÷ 가구소득) × 100 = 10% ↑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건 2005년입니다. 경기도 광주에 살던 15세 여중생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잠들었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죠. 우리나라는 영국의 선례를 인용해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간주하지만,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는 아닙니다. 연구자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요.



그 동안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를 살펴보면, 에너지 빈곤층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에너지 비용 과부담가구와 에너지 소비 박탈가구인데요.


■ 에너지 비용 과부담가구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구매하는데 지출하는 비용이 가구소득 수준에 비해 과중한 경우


■ 에너지 소비 박탈가구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소비하지 못하는 경우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된 개념은 아닙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못하면서,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대비 과중한 가구도 있기 때문이죠. 국내 에너지 빈곤층(중위소득 50% 이하인 가구 중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 이상인 가구) 규모는 2013년 기준 약 158만 가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내국인의 3.2%가량이 에너지 빈곤층인 셈인데요. 이는 2010년 147만 가구에서 꾸준히 증가한 수치입니다.


에너지 빈곤 문제는 제3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제3세계 에너지 빈곤층과 국내 에너지 빈곤층은 환경에서 차이를 보이는데요. 제3세계는 기술력이 부족한 개도국의 특성상 에너지에 대한 물리적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접근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국내 전력보급률은 100%에 가깝죠. 기술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에너지 빈곤층이 양산되는 제3세계와 달리, 국내 에너지 빈곤층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로 양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너지 빈곤과 에너지 고갈의 연결고리



에너지 문제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에너지 고갈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요. 에너지 빈곤과 에너지 고갈, 두 문제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에너지 고갈은 석유나 석탄과 같은 유한한 에너지 자원이 점차 줄어들어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문제를 의미합니다. 에너지는 고갈될수록 가치가 올라 구매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요. 비용 부담은 저소득층의 에너지 구매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에너지 고갈은 에너지 빈곤층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지요.



에너지 빈곤은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적정한 냉난방을 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에너지 구매비용 부담이 곧 의식주 지출 비용 저하로 이어져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에너지 고갈 → 에너지 빈곤 → 삶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에너지 빈곤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가 필요한데요. 에너지복지 전문가 박광수 박사와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에너지 빈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박광수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안녕하세요.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 박광수 박사입니다. 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저소득층의 에너지소비실태를 분석해 에너지 빈곤 해결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에너지바우처 제도에 참여했습니다.

유지우
현재 국내에서는 어떤 에너지 복지 정책이 시행되고 있나요?

박광수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①소득지원, ②가격할인, ③효율개선, ④공급중단 유예 등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후자일수록 간접적인 지원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먼저 '소득지원' 제도는 저소득층에게 전기요금 및 가스요금이나 연탄 등의 난방연료를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가격할인' 제도는 말 그대로 에너지 구매비용을 할인해주는 정책이지요.

에너지 빈곤층은 노후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노후 주택은 냉난방에 취약해 에너지 지출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에서는 창호와 단열을 지원하고, 고효율 조명기기를 보급하는 '효율개선' 제도를 시행하고 있죠. 마지막으로 요금이 체납된 가구도 여름철과 겨울철에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중단을 유예'하고 있습니다.


유지우
에너지 빈곤 해결에 모범이 되는 해외사례가 있다면요?

박광수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에너지 빈곤 개념을 비교적 일찍 도입한 영국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영국과 같은 선진국의 에너지 복지 정책은 환경보호도 함께 고민한다는 것이 특징인데요. 영국의 제도는 ①에너지 효율화 지원, ②에너지 비용 지원으로 나뉩니다.

'에너지 효율화 지원' 제도로 ECO와 Green Deal이 있습니다. ECO는 에너지 공급회사에게 가구의 에너지 효율 향상과 탄소배출 억제를 의무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제도인데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ECO 제도의 일부입니다. Green Deal은 에너지효율개선에 따른 설비 예산을 지원하는 정책이고요. 이밖에 '에너지 비용 지원' 제도에는 동계 연료비지원, 혹한기 연료비지원, 난방비 감면제도 등이 있습니다.

유지우
국내 에너지 빈곤 퇴치를 위해 제도적으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요?

박광수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에너지 복지 제도는 선진국에게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개발하는 것보다 시행 중인 제도의 효과가 제고될 수 있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 혜택을 골고루 분포시켜 일부 에너지 빈곤층에게 지원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는데요. 더불어 지원수준의 적정성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에너지 빈곤층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소득지원'과 '효율개선' 제도의 지원수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셀카로 에너지 빈곤 해결하는 앱 '에너지히어로'


에너지히어로는 에너지 빈곤과 기후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 루트에너지가 개발한 스마트폰 앱입니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모습, 쓰지 않는 전기제품의 전원을 끄는 모습 등 생활 속 에너지 절약 행동을 사진으로 찍어 앱에 등록하면 기부금이 적립되는 방식인데요. 기부금은 에너지 빈곤층에게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주는 비용으로 쓰입니다. 기부자의 사진 한 장이면 에너지 빈곤층이 20년 동안 매일 10분씩 형광등을 켤 수 있는 전력이 발생한다고 해요!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에너지 빈곤층.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에너지 빈곤 해결의 첫 걸음일 텐데요. 생활 속 에너지 절약으로 빈곤층의 악순환을 끊는 데 앞장 서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