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인사이드

세상 속 가치 찾기! 한 그루의 나무에서 행복을 발견하다

油유지우 2012. 7. 23. 10:00

 

시대가 바뀌면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도, 어떤 것에 대한 가치도 계속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 보다는 다양한 일에 욕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도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시대는 오로지 한 우물만을 파는 사람들에게 명인과 장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세상에서 잊혀지고 숨겨져 버린 것들을 지켜가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이름을 통해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죠.

 

그리고 여기, 세상에 숨겨진 가치를 찾아 한 우물 파기에 나선 작가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보다 주변의 가치를 빛나게 하고 싶은 작가, 이명호입니다. 오늘 에너조이는 세상 속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 이명호 작가와 함께 그의 인생관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에너조이: 보통 사진 작가 하면 인물 사진이나 풍경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촬영한 작품들을 보면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명호 작가: 학교 다닐 때 저는 그저 그 곳에 존재할 뿐인 학생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떤 꿈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죠. 당시 저는 학교에 ‘놀러’ 다녔습니다. 공부보다는 학교 생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렇게 대학교를 마치면서 저는 등대지기가 되고 싶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며 소박하게 살아갔으면 했죠. 그러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서 우리 삶 주변의 잊혀진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고민이 작품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게 됐습니다.

 

 

에너조이: 꿈이 등대지기셨다니 인상적인데요?
이명호 작가: 당시에는 정말 진지했어요. 어떻게 하면 등대지기가 될 수 있고, 그 삶이 어떤지 궁금해 일일히 손글씨로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습니다.

 

에너조이: 답장은 어떻게 왔나요?
이명호 작가: 글귀 하나하나가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등대지기는 외로움을 잘 견뎌낼 수 있어야지...”라는 대목에서 왠지 울컥 했던 기억도 나네요.

 

 

에너조이: 등대지기에서 사진작가로의 전향의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명호 작가:
사진작가가 등대지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등대지기라는 게 어두운 곳을 비춰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자라고 한다면, 사진작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시공간의 한 지점에 잠깐 필름을 담갔다 꺼내는 일. 그래서 함께 바라봐야 할 문제를 들추고 환기하는 게 사진작가의 일이니까요.

 

에너조이: 특별히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명호 작가:
당시에는 예술의 어떤 매체라도 좋았습니다.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킬 때 그 가리키는 곳을 보라는 것이지 손가락 그 자체를 보라는 것이 아니듯 매체 그 자체는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시기에 제가 사진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혼자 작업을 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기였거든요.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매체를 찾다 보니 사진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참 역설적인 일이 아닐까요?

 

 

에너조이: 명성에 비해 작품 수가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이명호 작가:
명성이라고 하니 거창하네요. 그저 이제 조금 이름을 알리고 있을 뿐이죠. 제 작품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작품 하나가 하나의 프로젝트와 같아요.

 

예를 들어, ‘나무’ 연작의 경우, 우선, 작업 대상을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닙니다. 그렇게 알맞은 나무를 찾고 나면 적어도 사계절을 지켜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죠. 하나는 처음에 제가 느꼈던 그 감성이 맞는 것인지 즉, 주관적 감성을 객관화 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전 날 쓴 연애편지가 다음 날 보면 참 유치해 보일 때가 있듯 그때 그 감성이 객관성을 얻도록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나무의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때는 찾기 위함입니다. 사계절을 지켜보고 또 하루 가운데 빛의 양과 질을 살피며 적합한 때를 찾습니다. 이렇게 해서 작업 결정이 나고 나면, 나무에 맞춰 캔버스를 제작하고 동원할 중장비와 인력과 각종 재료 등을 챙기고 촬영 허가를 위한 절차까지 밟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죠. 그러니 한 작품을 환성하는 데에 적어도 일년 이상의 고단한 여정이 필요하고, 자연히 저는 소작농일 수 밖에 없지요.  

 

에너조이: 이명호 작가에게 작품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명호 작가:
음….어렵네요. 어쩌면 작가의 길로 접어들 때부터 작업을 그만 두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뇌게 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에서 정답은 있을 수 없듯이 그걸 고민하는 고단한 여정, 그 자체가 작품이고 예술이지 않을까요? 따라서 시험으로 치면 작가는 출제위원이지 채점위원일 수 없습니다. 그저 함께 공유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환기하는 일, 그걸 들추고 다시 보게 하는 자라 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작가의 몫입니다.. 그 속에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것은 오롯이 보는 사람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에너조이: 현직 작가이자 경일대학교 교수까지 겸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쉽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병행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명호 작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따로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점차 인지도가 쌓이면서 교수직 제의가 들어오더군요. 작품 활동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깊이 고려치 않다가 문득 ‘앞을 보고 가는 일’ 즉, 전방위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일’ 즉, 후학을 양성하는 일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렇게 교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에너조이: 교수로써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명호 작가:
작가는 수도자와 같다는 말입니다. 자나 깨나 정진을 하라는 뜻이지요. 작업이라는 게 논리와 이성만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치 수도자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처럼 늘 가슴 속에 어떤 화두를 품고 그걸 끝임 없이 되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말풍선처럼 ‘뿅’ 해답이 떠오릅니다. 작업은 인내의 양과 비례한다는 겁니다.

 

 

에너조이: 먼 훗날, 세상을 떠날 때 비석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명호 작가:
없어요. 마치 어디 가면 바위에 쓰여진 “누구 왔다 감”이란 낙서처럼 그저 “세상에 있다 갔다”는 글귀 한 줄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 한 마디의 영향력을 아는 그는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고 또 아껴가며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등대지기를 꿈꾸다 이제는 한 장의 사진 속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는 이명호 작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그의 행보가 세상에 어떤 행복을 부여하게 될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