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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④] 옥수역; 함께타는 공공미술(下)

 


연꽃 만나는 바람같이 달맞이공원을 걷는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옥수역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무대로 했기 때문에 어느 작품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보는 것 보다 전체적으로 이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고 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보였다. 그 메시지란 간단하지만 가볍지는 않았다. 바로 이렇게 현실 속에 독자적인 예술 공간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예술과 현실이 서로 어우러지며 기묘한 앙상블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옥수역 계단에 앉아 사람과 자동차가 이 거대한 예술 공간 밑으로 지나다니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는데, 문득 이 근처에 달맞이공원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오래 전 보았던 영화 <…ing>의 그 때 그 공간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그리고 여전히 옥수동에 남아있는지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옥수동 달맞이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십 년 전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지금처럼 고층 아파트 단지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팔 층 남짓의 아파트가 드문드문 서 있었고 입구 어귀에 조그만 상가와 학교가 하나 있는, 그런 아담한 동네였다. 동네 가운데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군것질거리를 사 들고 언덕에 올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내려오는 게 하루 일과였다. 하루는 개를 산책시키던 어떤 형이 우리를 골려 주려고 개를 풀어 놨는데,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개를 피해 도망 다니던 그 언덕이 그때는 참 넓어 보였다. 그때 그렇게 높아 보이고 넓어 보이던 그 언덕은 내 키가 커질 수록 점점 낮아졌고 나이가 들수록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오래 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뒤 그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그때 그 동산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속으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제대로 산책로가 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무가 울창하지도 않아 겉보기에 볼품없었지만, 그 동산엔 쉽게 잊혀지지 않는 유년의 기억들이 묻혀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각보다 단단하여 쉽게 쪼개어지지 않았다.


나이가 더 들어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더 넓고 훌륭한 공원과 언덕을 종종 찾게 되었다. 봄이면 집 근처 올림픽공원을 걸으며 봄 꽃 구경을 하고, 가을이면 서울숲 갈대밭에 놀러 가는데 서울에도 이처럼 시민들이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있음이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그 공원들을 즐겁게 거닐 수는 있으나 정을 붙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공원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도 쉬이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가 느껴졌다. 사실 잘 다듬어지지 않거나 혹은 규모가 크지 않아도 홀로 생각할 일이 있을 때 집 가까이 두고 쉽게 향할 수 있는 그런 공원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그런 공간을 꿈꾸었고, 더욱 그런 곳에 마음을 붙이고 싶었다.


 

옥수역 출구에서 조금 오래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면 철조망 사이로 작은 쪽문이 나 있는데 이 쪽문이 공원으로 향하는 입구 중 하나다. 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아파트와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 시작이 참으로 소박하다. 입구를 지나 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 둘 오르는데 옆에 개나리가 활짝은 아니나 저마다 송송 피어있었다. 기상청에서 올 해 봄꽃이 열릴 무렵이 요즈음이라고 했는데 제법 쌀쌀한 날씨 탓에 조금 더디게 열리고 있었다. 사실 이 봄꽃 구경을 하고 나면 달맞이공원의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계단을 오르면 제법 잘 닦여진 흙 길이 나오고 그 길을 걷다 보면 주변에 체육시설이 조금 보이다가 바로 한강을 마주하며 공원은 끝이 난다. 사이사이 갈래길이 있어 구불구불 걷는 재미는 있으나 나무가 울창한 것도 아니고 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도 아니어서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 든다. 달맞이공원을 찾은 날도 가볍게 옷을 입은 동네 주민들이 뒷산 산책하듯 한 두 명 걷다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달맞이공원을 찾는 이들이 말하는 이 길의 매력은 그 심심함에 있었다. 아파트단지에서 공원에 올라 한강을 마주하며 공원이 끝나는 곳에 정자가 하나 놓여있는데, 이 정자에 앉으면 한강 전경이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에 성수대교가 보이고 저 멀리 강남 압구정이 보이는데 그곳의 소란스러움은 이곳까지 닿지 않아 조용히 바람 소리가, 또 강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 강만 지나면 나오는 압구정은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를 마주하고 있는 달맞이공원은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게 신기했다. 


정자에 앉아 쉬었다 가는 걸 딱히 경고판을 세워 막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걷다 흘린 땀을 식히고 가거나, 간식 거리를 들고 와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가는 중에도 달맞이공원의 정자는 심심하게 그러나 말보다 더 강렬한 침묵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나도 준비해간 도시락을 꺼내 한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보니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사실 이 달맞이공원은 예전에 한 영화에 배경으로 잠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를 본 뒤로 혼자 생각할 일이 있거나 잠깐 한강 흘러가는 걸 보고 싶을 때는 달맞이공원이 생각났다. 기실 요즘 마음이 어지러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직장 생활이지만 사회 생활이라는 게 이것저것 신경 쓰고 마음 쓰다듬을 일이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달맞이공원을 찾은 것이 스스로에게 감사한 일이라는, 그런 생각을 정자에 앉아 오래도록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이윽고 그 장소에 다다랐다. 영화 속 김래원과 임수정이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우고 둘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던 그 공간을 마주했다. 사람 한 명 없는 옥수동 달맞이공원 난간에 기대며 영화 속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은 현실일까 예술일까? 나 역시 영화 속에 스쳐가듯 등장했고, 그렇기에 이 공간이 이처럼 낯익은 이유는 아닐까? 나는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을 말없이 마주하며 오래도록 그 공원을 거닐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 달맞이공원 흙길을 걸어나오며 아주 오래된 시詩 하나가 생각났다. 미당 서정주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인생을 늘 설렘으로 가득 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더 여유롭고 온유한 삶을 살자고 말했다. 바로 그처럼 우리의 삶도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침묵과 텅 빈 공간으로 삶의 구석구석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 가슴을 떨리게 했다. 현실과 예술이 유리된 듯 혹은 끈끈하게 합쳐진듯, 그 경계가 모호할수록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드은 더욱 독특한 그리고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기묘한 경험을 할수록 더 많은 예술이 현실이 되고, 더 많은 일상생활이 예술이 될 것이다. 꼭 그것은 서울시가 말하는 도시갤러리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좋다. 스스로 책을 읽고 느낀 감동을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마주하고, 영화 속에 나온 그 공간을 현실에서 직접 걸어보고, 거대한 일상공간이 훌륭한 예술 공간으로 바뀔 때 저마다 제가끔의 감정을 느끼며 다양한 감정으로 그 변화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또 새롭게 느껴나갈 것이다. 그래서 마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있는듯 없는듯, 내 곁에 예술이 있는듯 혹은 이 현실 자체가 예술인듯, 아니면 늘 예술 같은 일상생활을 살 듯 그렇게 옥수동은 내게 말을 건다. 나는 그래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옥수동을 바라보며 가로질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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