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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⑨] 청운공원; 인왕산에서 굴러 온 바위(上)

가치를 발견하며청운공원 인왕산에서 굴러 온 바위

 


꼬리에 꼬리를 잇는 소설


예전에 온라인 게임 사이트인 한게임에서 <한게임 소설놀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다. 한게임 사이트에 로그인한 사람은 누구나 이 서비스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일정한 시간 내에 사람들은 한 줄씩 댓글을 달아가며 앞사람이 써놓은 소설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참가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한 것도 아니었고 소설의 주제를 특별하게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이 서비스는 특정 게임 플레이어들끼리 사이트에서 서로 댓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엉뚱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에서 시작했는데, 첫 서두와 일정한 시간만 던져준 채 가장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조금씩 발전했다. 


소설놀이, 흔히 릴레이 소설 쓰기로 알려진 이 서비스의 가장 큰 재미는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였다. 앞사람이 써놓은 이야기의 끝에 내가 어떤 내용을 이어 붙이든 상관없었고 또 내가 써 놓은 이야기에 뒷사람이 어떤 내용을 이어 붙이든 관계없이 소설은 술술 써 내려져 갔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시작할 때와 그 끝이 사뭇 달랐는데 엉뚱한 소재들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며 이야기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이 놀이의 진정한 재미였다. 


가령 이런 것이다. 처음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이윽고 다음 사람에 의해 갑자기 외계 생물이 지구에 침공하는 끔찍한 순간으로 변하고 이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계 대통령으로 강아지가 선출되고, 알고 보니 이 강아지는 TV 프로그램 ‘1박 2일’에 나오던 상근이의 친구여서 순식간에 ‘1박 2일’ 멤버들이 지구 특공대 정예요원으로 선발되는 식으로 도무지 연관성도 없고 이야기의 뚜렷한 주제도 없지만, 이 놀이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씩 모두 작가가 되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잇고, 개연성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그 놀이에 참가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소설은 이미 완성되어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놀이가 꼭 예전 <가족 오락관>의 고요 속의 외침 놀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슷한 놀이는 이미 인터넷 사이트 댓글 형식으로 널리 퍼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공론화된 장에서 하나의 서사를 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놀이의 장은 분명 신선했다. 


비록 <한게임 소설놀이>는 2010년 8월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지만, 분명히 이 서비스는 집단 창작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예 창조의 과정이 아니라 웃고 떠들고 즐기는 유희라고 생각하며 제각기 참여한 그 끝에는 어느 새인가 기묘하고 엉뚱한 소설이라는 예술작품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놀이를 함께 즐긴 사람들은 모두 몰랐을 것이다. 스스로 댓글을 달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참여한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예술의 한 단면이었음을 말이다. 


집단은 쉽게 통제될 수 없기에 때로 처음 의도한대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어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짐작할 수 없기에 무한대로 발산하는 상상력을 키워내기도 한다.

 


 

SETI 프로젝트


개인보다 더 위대한 집단의 힘, 이는 공동체 구성원이 다 함께 동일한 행위를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술과 생활과 종교와 생존 행위가 쉽게 구분되지 않던 선사시대에는 모든 것이 집단의 단위로 이루어졌다. 


사냥하러 가기 전 다 함께 모여 창을 흔들며 사기를 높였고, 그들이 합심하여 짐승을 잡은 날이라면 밤새 불을 켜고 그 가운데 죽은 짐승의 주검을 놓고는 빙 둘러가며 소리를 지르고 다시 창을 찌르는 행위를 반복하곤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냥하는 기술을 공동으로 익힐 수 있었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이루어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태고의 그 행위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날 것이었지만 때로 그 집단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곤 했다. 무언가 완성된 것이 예술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무리의 몸짓이 예술이었고 원시의 그들도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유사한 것이 1990년대부터 시작된 SETI 프로젝트다.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은 지구 밖에 존재하는 이성적인 생명체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흔히 라디오 SETI가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인데, 우주에서 오는 라디오 전파 신호를 잡아내기 위해 전파 망원경을 사용한다. 이렇게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잡아낸 라디오 전파를 해독하려면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한데, 이전의 SETI 프로그램은 대부분 전파 망원경에 딸린 슈퍼컴퓨터들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점점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더 많은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단지 전파망원경에 딸린 슈퍼컴퓨터를 확장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1995년 이 프로그램의 담당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인터넷에 연결된 더 많은 사람의 컴퓨터를 조금씩만 빌려 쓰면, 하나의 단일한 슈퍼컴퓨터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SETI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다운받아 실행만 시켜둔다면 이와 비슷한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묶어 하나의 슈퍼컴퓨터와 같은 효과를 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 우주 꿈나무들을 열광시킨 SETI@Home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1999년 드디어 그 빛을 보게 된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건 순전히 어떤 영화 때문이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콘택트(Contact, 1997)>는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칼 세이건의 책과 그의 책이 영상에 아름답게 담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는 어렸을 때 아버지(데이빗 모즈)를 잃은 엘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의 가슴 아픈 우주 탐험 실패작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전파를 갖고 노는 것을 즐겼고 결국 소원대로 천문학자가 된다. 어느 날 우연히 외계로부터 날아오는 전파 신호를 포착한 엘리 박사는 그 신호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지만 외계로 향하는 탐사 장치의 설계도임을 알게 되고 결국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를 극복하고 그 탐사장치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현대 문명으로도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이 그 탐사장치에 담겨 있었고 엘리 박사는 스스로 탑승자가 되어 그 탐사장치를 타고 외계로 나선다. 그녀는 순식간에 저 멀리 거문고자리에까지 도달해 외계 생명과 조우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허구로 오해받고 그 유명한 오컴의 면도날 이론처럼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며 은폐된다.

 

 

여기서 엘리 박사가 베가 성으로부터 오는 전파 신호를 우연히 잡아내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었다. 미국 뉴멕시코의 황량한 벌판에 수십 개의 거대한 전파망원경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데 엘리 박사는 그 가운데 차를 세우고 헤드폰을 쓴 채 조용히 신호를 듣기 시작한다. 이윽고 찌지직거리는 잡음과는 확연히 다른, 규칙 있는 소리가 쿵쿵……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들려오기 시작하고 그녀는 본능에 따라 직감한다, 이건 저 멀리 외계로부터 들려오는 신호야. 


그 나지막한 기계음은 영화를 보던 나에게도 가슴을 울리며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떨림이 고등학교 천문 동아리로 이어졌고, 이윽고 SETI@Home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것은 참 간단한 일이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영화를 보고 키워왔던 ‘외계존재와의 만남’이라는 꿈을 직접 마주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전율을 가져다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컴퓨터에서 SETI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지만, 사실 이렇게 몇십 년이 지나도 전파 신호를 영화처럼 잡아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어디가 끝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지금 전 세계의 모르는 수 많은 사람과 함께 이 행위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유희보다 즐거웠다. 


나는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내일을 그리기 위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있었고,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 아름다운 예술로 다가왔다. 


어떤 순간의 완성된 오브젝트가 아니라, 그 전체의 과정 자체가 이미 예술이었다. 종로 부암동 청운공원에 위치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인왕산에서 굴러운 바위>는 바로 이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집단은 개인이 느낄 수 없는, 함께하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는 것을 말이다.



황정운 에너지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