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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인사이드

배출가스 조작 파문에 따른 휘발유 수요 증가


지난 9월 중순 세계 굴지의 자동차 기업이 배출가스 조작으로 환경 규제를 피해 가려다 발각됐는데요. 이 사건으로 독일의 국민 자동차 브랜드로 사랑받아 온 기업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고, 나아가 디젤 산업 전체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디젤이 궁지에 몰린 가운데, 슬며시 기지개를 켜는 쪽도 있었는데요. 다름 아닌 휘발유입니다. 디젤 스캔들의 ‘승자’가 휘발유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죠.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클린 디젤’의 실상이 드러나다 


 

먼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발표가 나온 지난 9월 18일로 거슬러 가 보면, EPA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폭스바겐 그룹 차량 48만2000대가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며 리콜을 명령했는데요. 실제 주행 중에는 기준치보다 최대 40배나 높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면서도, 실험실 테스트에서는 배기가스를 제거하는 ‘눈속임’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는 것이었죠. 


‘클린 디젤’을 내세우며 승승장구하던 기업에서 터진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세계는 발칵 뒤집혔는데요. 당장 폭스바겐 주가도 휘청였습니다. 사태가 불거진 직후인 21~22일 주가가 20%가량 폭락하면서, 불과 이틀 사이에 250억 유로(약 28조 원)가 증발했는데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 각국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고, 미국 등에서는 소비자들의 집단소송도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디젤 차량 전반에까지 우려가 번진 건데요. 특히 디젤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서 파장이 컸습니다. 폭스바겐 외의 다른 차량도 주행 시에 배출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다는 조사가 연달아 발표된 것이죠. 


 

사실 디젤은 ‘미래의 연료’라고도 불려 왔는데요. 휘발유보다 저렴한 데다 연비가 높고 성능도 우수한 것으로 여겨졌죠. 특히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환경친화적이라는 이미지도 두드러졌습니다. EU 각국이 앞다퉈 디젤 차량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나 세제혜택을 제공한 배경에도 환경에 대한 고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클린 디젤’ 신화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디젤 차량과 연료를 둘러싼 논쟁에도 불을 댕겼고요. 



디젤은 울고 휘발유는 웃고 


 

디젤이 추락하는 사이 휘발유가 새삼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휘발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것인데요. 이미 2015년 한 해 휘발유 수요가 계속되는 원유값 하락에 힘입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만, 배출가스 조작 의혹에 휩싸인 디젤 대신 휘발유가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휘발유 수요가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전망됐는데요. 석유 컨설팅사인 페트러매트릭스는 이번 사태의 여파로 유럽 내 휘발유 수요가 2016년 내지는 2017년이면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레이팅스도 지난 9월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에서 디젤이 아닌 휘발유 엔진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는 미국이나 아시아보다 유럽의 제조사들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그동안 침체해 있던 유럽의 정유시설이 다시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습니다.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은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합니다. 여기에는 각국 정부가 디젤 엔진 개발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소비자에게는 통 큰 세금 혜택을 내놓으며 디젤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 것도 한몫을 했죠. 때문에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 이후 EU의 디젤 정책이 바뀔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데요. 정부 지원이 축소되거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디젤 차량의 생산비용과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자연히 유럽인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휘발유 차량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에너지 컨설팅사인 우드매켄지는 유럽에서 디젤에 대한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이 줄어들 경우, 디젤 승용차에 대한 수요가 2035년이면 29%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같은 기간 휘발유 수요가 4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으니, 이대로라면 휘발유가 유럽 시장을 다시 차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세제 혜택 축소로 첫해에만 운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무려 160억 유로(약 20조 원)에 달하며, 기존 디젤 차량 운전자들의 15%는 휘발유 차량으로 갈아타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계산도 나왔습니다.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미국과 중국에서는 국제유가 하락세의 영향으로 휘발유를 찾는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입니다. 미국의 경우 디젤 차량 점유율이 5% 미만에 그치고 있어 이번 스캔들이 미칠 영향은 크지 않으리라고 전망되는데요. 


중국은 최근 경기 둔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자동차 판매율, 특히 휘발유 소비가 많은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선임분석가인 올리비에 아바디는 “중국 경제 성장의 패턴이 산업 중심에서 휘발유 차량을 소유하는 데 관심 있는 중산층으로 급격하게 이동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장기적으로 중국 외 다른 신흥경제국에서 중산층 소비자가 늘어나면 세계 휘발유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디젤의 죽음’은 아직 이르다? 


 

이쯤 되면 휘발유와 디젤의 운명이 엇갈렸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휘발유를 대체할 연료로 주목받았던 디젤의 상승세가 한풀 꺾였으니 말이죠. 오히려 디젤이 질소산화물 등 유해물질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환경과 건강에 끼치는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에 디젤 사용을 규제하는 정책도 나오는 실정인데요.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안느 이달고 시장은 2020년까지 파리 내에서 디젤 차량의 운행을 모두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런던의 보리스 존슨 시장 역시 시내에서 다니는 디젤 차량에 대해 혼잡통행료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번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던진 충격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가운데, 디젤의 위기를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은데요. 디젤 승용차 수요는 줄어들지 몰라도, 화물트럭, 경량트럭, 버스 등 상용차 시장에서는 휘발유보다 디젤에 대한 선호도가 월등히 높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들이 20년 가까이 유지해 온 디젤 지원 정책을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같은 원료에서 만들어지는 휘발유와 디젤의 서로 다른 행보에 눈길이 쏠립니다. 


※ 위 내용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SK에너지의 입장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