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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인사이드

일본 석유산업의 현황과 시사점

 

일본 아베 정부는 통칭 ‘아베노믹스’의 3대 축인 일본재건전략에 따라 일본 3대 경제문제인 ‘과잉규제⋅과소투자⋅과당경쟁’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2013년 12월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석유산업 또한,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흐름 속에서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고 있는데요. 중화학공업과 함께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일본 석유산업은 아베노믹스 이전부터 대내⋅외 상황변화에 맞춰 감축⋅통폐합⋅투자 등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기준, 한때 17개에 달하던 관계 기업은 크게 5개 그룹으로 재편성되고, 원유처리능력은 절정기인 2008년 489만B/D(28개 정유소/정유공장) 대비 20% 감축돼 395만B/D(23개 정유소/정유공장)인 상황이죠.



일본 석유화학 콤비나트


▲  일본 콤비나트 전경


먼저 일본 석유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석유화학 콤비나트(kombinat)가 어떤 규모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그 형성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콤비나트

일정한 지역에서 기초 원료로부터 제품에 이르기까지 생산 단계가 다른 각종 생산 부문이 기술적으로 결합되어 집약적인 계열을 형성한 기업의 지역적 결합체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산업으로 석유화학 콤비나트를 들 수 있다. 관련성이 큰 산업끼리 계열화된 콤비나트의 형성은 원재료의 확보 · 제품 생산의 집중화 ·유통 과정의 합리화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가의 절감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는 울산 및 여천 공단에 석유 화학 콤비나트가 형성되어 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 석유화학 콤비나트는 소규모 다수기업으로 구성돼 전국으로 분산된 것이 특징인데요. 단계적인 설비확장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은 물론 한국과 중동 등의 후발국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아 규모의 경제효과가 큰 힘을 발휘하는 현재 업계에서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수적으로는 석유화학 기업 간 과당경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죠. 


 

일본 석유화학산업은 1950년대 경공업 대체를 위해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들어서면서 형성됐습니다. 1956년 가나가와 현, 미에 현, 야마구치 현, 에히메 현 등 네 곳의 해변에 콤비나트 건설이 추진되고 1958년 미쯔이화학 야마구치 공장에서 일본 최초로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이 생산됐는데요.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에 따라 1960년대까지 주요 도시에 콤비나트를 형성, 타 산업 대비 비교적 거대 산업화하여 현재 9개 지구 15개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있습니다.



개혁을 통한 일본 석유산업의 변화


 

콤비나트 형성 이후 성장을 거듭해온 업계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수요 대비 설비 과잉으로 인한 경쟁력 하락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80년대 에틸렌 생산설비 감축 및 가동 중단 등의 제1차 구조조정을 시작하죠. 


그 이후 1990년대 내수 활황에 힘입어 업계는 안정화됐지만,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불황과 한국⋅대만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기업 간 인수·합병 등의 구조조정과 사우디 등에 범용 플랜트를 건설하는 등 해외투자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한 제2차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2차 개혁을 통해 17여 개에서 크게 5개의 석유회사 그룹으로 개편하고, 내수시장 강화에 나섭니다. 


 

구체적으로 자국 콤비나트에서는 내수시장을 강화하는 반면,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 인도네시아 및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 직접 투자하고, 중국 진출을 개시하는데요. 품목별 생산능력을 단순 합계한 계산으로 2000년도 초 일본 국내 생산력의 절반에 가까운 연간 900만 톤에 이르는 석유화학제품 생산능력을 해외에 갖추게 되죠. 


또한, 1994년 석유제품 수입을 자율화하는 특정 석유제품 수입 잠정조치법을 폐지하는데요. 일본 석유산업은 특정 석유제품 수입 잠정 조치법을 통해 휘발유나 등유, 경유의 수입을 사실상 정제업자에게만 인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을 폐지하면서 석유 수입 자율화를 계기로 석유 시장의 가격경쟁이 격화되고 휘발유를 중심으로 석유제품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데요. 이와 더불어 주유소 공급원증명제도 폐지, 셀프주유소 허용, 석유제품 선물거래 시행 등 자유경쟁 강화를 위한 규제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2차 개혁 이후에도 이어지는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석유화학제품 관세율 인하로 인한 내수시장 방어 실패, 수출여건 악화, 설비 노후화 진행 등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제3차 개혁에 돌입하는데요. 


1990년대 통합이 외형적 통합에 그쳤던 반면, 2000년대 통폐합은 상당수 기업이 석유화학 사업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설을 폐기하고 재건하는 등 충분하지는 않으나 실질적 구조조정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석유업법 폐지로 정부에 의한 석유자원 수급조정 규제를 종식하면서 석유산업의 완전 자유화를 이루고 비축의무와 품질관리의무만 남게 되죠.


 

태양광 및 풍력 등 비화석에너지의 이용확대와 화석에너지원의 효율적 이용촉진을 의무화하고자 2009년 제정된 공급구조고도화법은 과잉능력 감축을 위한 법으로, 2020년까지 설비 능력 30% 축소를 목표로 한 제4차 개혁의 서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2000년도 초반부터 석유화학 콤비나트의 구조개혁⋅에너지효율성 향상 등 통칭 ‘차세대 콤비나트 형성’ 시도와 비화석에너지 활용을 위한 신에너지와 관련된 사업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공급구조고도화법은 이를 법제화한 것인데요. ‘가정의 태양광발전장치에서 발생한 잉여전력 매수의 의무화’ 등으로 널리 알려진 공급구조고도화법은 석유화학 콤비나트에서도 잔유처리장치 개선 목표 10% 달성, 정제능력 감축 등 소정의 성과를 거둡니다.



산업경쟁력강화법 제정


 

공급구조고도화법은 ‘새로운 에너지원⋅효율적 에너지 사용’이라는 점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일본이 당면한 석유화학업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2013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하여 제4차 개혁을 성공리에 이끌고자 했는데요. 


산업경쟁력강화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아베노믹스의 3대 축인 일본재건전략에 따라 일본 3대 경제문제인 과잉규제⋅과소투자⋅과당경쟁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으로,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타개하여 경쟁력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산업경쟁력강화법의 배경에는 일본 석유화학산업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본 석유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3년 제조업 5%에 큰 폭으로 미치지 못하는 1% 미만 수준이죠. 타 제조업종 대비 수익기반이나 재무기반이 약하며, 해외진출 또한 미비하고요. 미국 석유 메이저 회사나 중국 국영 석유회사와 같이 원유개발⋅생산부문 이익이 두드러진 것도 아니며, 한국기업과 같이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이 높은 것도 아닌 실정인데요. 총자산순이익률, 자본회전율 등 주요 재무제표의 비교에서도 미국 메이저, 중국 국영기업, 한국기업의 1/2∼1/4 수준의 수치가 다수 분포합니다. 


 

이보다 더 큰 위기감은 국내⋅외 수요의 불투명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석유산업은 다른 제조업에 비해 내수의존도가 매우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해외 전개에 있어 콤비나트 규모나 아시아 신흥국에서의 국영 석유회사의 존재, 소매 신규참여 규제⋅가격통제 등의 규제가 가로막고 있는데요. 


우선 의존도가 높은 일본 내수시장 상황을 보면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인해 석유화학제품 수요 자체가 감소하고, 앞으로도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초과공급 해소를 기대할 수 있는 해외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나 조만간 국제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고, 이러한 공급과잉 상태가 장기간 해소되지 않으리라고 전망하고 있어 일본 정부⋅업계의 근심이 깊은데요. 현재 시점에서 ‘과다정제능력 해소, 통합운영에 의한 설비 최적화, 노후 설비의 보전, 에너지효율 개선, 고부가가치화’ 등이 개선과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4차 개혁은 시작됐습니다. 물론 산업경쟁력강화법은 석유산업 자체만을 표적으로 나온 법안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 산업을 포함하여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여 경쟁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자는 것이며, 이러한 ‘개선’은 일본이 강점으로 하는 분야죠. 


일본은 장기간의 불황 속에서도 일정 수준 경쟁력을 유지해 왔으며, 자신들의 파이를 지켜오는 데 실패하지 않고 있는데요. 일본 정부는 석유산업 재편과 관련하여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실시하는 것이다’ 라고 전제를 두면서도 ‘국제적 통합에너지 기업으로의 성장’을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환경정비를 시행한다는 방침입니다.


 

‘자본을 뛰어넘는 레이아웃의 설계’라는 관례상 다소 파격적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일본 콤비나트 자본의 벽과 지리적 벽을 뛰어넘자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죠. 실제로 제약과 규제 덩어리인 레이아웃을 변경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차세대 콤비나트 추진과정을 고려한다면 투입대비 결과물도 산업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라 예상되는데요. 그럼에도 자본과 지리적 벽을 뛰어넘자는 파격적인 시도에서 일본 석유화학산업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일본 정책당국의 의지와 업계의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 이 기사는 대한석유협회가 발간하는 <석유와 에너지 296호>, 장윤종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기술지원팀장의 ‘일본 석유산업 현황과 시사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