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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짜라짜라 추억을 먹다, 인천 짜장면 박물관

짜라짜라 추억을 먹다, 인천 짜장면 박물관

 

짜장면박물관의 외관 모습입니다. 금방이라도 배달을 갈 것 같은 모습이네요.

 

남녀노소 관계없이 즐겨먹는 짜장면은 대한민국 대표 대중 음식 중 하나입니다. 어느 동네에 가든 중화반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어디서나 전화 한 통이면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부터 이어져 오늘날까지 짜장면은 한결같이 우리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짜장면은 중국 산둥성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굳이 한국에서 짜장면의 고향을 꼽자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짜장면은 중국 산둥성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굳이 한국에서 짜장면의 고향을 꼽자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식 춘장에 캐러멜을 넣어 달콤하게 만든 짜장면이 어떻게 한국 외식문화의 중심이 되었을까요? 이는 인천 차이나타운 내 ‘공화춘’에서 볶은 춘장에 면을 비벼 만드는 데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번에 유스로거는 근대 음식사에 큰 획을 그은 등록문화재 제246호 ‘공화춘’에 건립된 ‘인천 짜장면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유스로거와 함께 짜장면의 세계 속으로 떠나볼까요?

 

인천 짜장면 박물관 찾아가는 길과 관람 안내

 

 

 

 

짜장면 박물관은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짜장면 박물관은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유스로거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차이나타운 정문으로 들어간 뒤, 복성동 주민센터에서 우회전해서 짜장면 박물관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짜장면박물관의 외관 모습입니다. 금방이라도 배달을 갈 것 같은 모습이네요.

 

짜장면 박물관 앞에는 철가방을 들고 있는 배달부 아저씨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죠. 유스로거가 방문할 때는 주말이라 평소보다 더욱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했답니다.

 

 

짜장면 박물관 입구에는 티켓 발매기가 있습니다. 원하는 티켓 수를 입력한 후 지폐를 넣으면 티켓이 발매 됩니다. 발매한 티켓을 출입문에 갖다 대면 티켓 바코드가 자동으로 인식되어 박물관 입장이 가능합니다.

 

짜장면 박물관 입구에는 티켓 발매기가 있습니다. 원하는 티켓 수를 입력한 후 지폐를 넣으면 티켓이 발매 됩니다. 발매한 티켓을 출입문에 갖다 대면 티켓 바코드가 자동으로 인식되어 박물관 입장이 가능합니다.

 

짜장면 박물관은 총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건물 2층에는 제1전시실부터 제5전시실까지 있고, 1층에는 제6전시실이 있습니다. 유스로거는 2층에 있는 제1전시실부터 방문했습니다.

 

 

제1전시실

 

제1전시실에서는 1883년 개항 이후 인천 화교의 역사를 통해 짜장면의 탄생과 변천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1전시실에서는 1883년 개항 이후 인천 화교의 역사를 통해 짜장면의 탄생과 변천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개항기 인천항의 화교를 통해 처음 소개된 중국 산동식 짜장면은 중국 된장인 ‘미옌장’을 비벼 만든 것으로, 맵고 짠맛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짜장면은 그 재료와 맛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화교들의 이발 도구였던 ‘삭도’입니다

 

제1전시실에는 짜장면의 역사 이외에도 인천 화교사회의 변천상을 보여주는 유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위의 유물은 화교들의 이발 도구였던 ‘삭도’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 화교들이 이발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초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던 중국음식점 ‘공화춘’과 관련된 유물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공화춘은 신해혁명 후, ‘공화국 원년의 봄’을 맞는다는 의미로 191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최초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던 중국음식점 ‘공화춘’과 관련된 유물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공화춘은 신해혁명 후, ‘공화국 원년의 봄’을 맞는다는 의미로 191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제1전시관에는 1910년대 당시 공화춘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회계장부와 주식증서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요? 바로 그 답은 제2전시실에서 밝혀집니다!

 

 

제2전시실

 

인천항에서 부두 노동을 하던 중국인 노동자 ‘쿨리’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산동식 짜장면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2전시실에서는 짜장면이 처음 탄생한 개항기 당시 인천항 부두 풍경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는데요. 인천항에서 부두 노동을 하던 중국인 노동자 ‘쿨리’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산동식 짜장면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1884년 당시 중국인이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에 청국 조계지를 설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요리집이 생겨나게 됐습니다. 이때 산동 출신의 노동자들이 고향의 맛에 끌려 이곳을 자주 찾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값싸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3전시실
 

제3전시실에서는 1930년대 당시 공화춘의 접객실이 재현되었습니다

 

제3전시실에서는 1930년대 당시 공화춘의 접객실이 재현되었습니다. 화교들이 즐겨먹던 짜장면은 중화요리가 각광받던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음식점의 메뉴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지금과 같이 짬뽕과 짜장면이 올려져 있네요. 그때 당시에도 사람들은 이 둘 중 어느 것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다음은 1950년대 공화춘의 면 요리 상차림입니다. 면기, 중사발, 고량주병, 술잔, 청태 물컵, 젓가락, 소형 접시, 양념병, 재떨이로 이루어져 있네요.

 

다음은 1950년대 공화춘의 면 요리 상차림입니다. 면기, 중사발, 고량주병, 술잔, 청태 물컵, 젓가락, 소형 접시, 양념병, 재떨이로 이루어져 있네요.

 

 공화춘은 현재 건물의 동쪽 부분(동원)만을 사용했으나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1968년경 서쪽 건물(서원)을 매입, 보수하여 1983년까지 사용했답니다.

 

제3전시실에서 공화춘의 과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원래 공화춘은 현재 건물의 동쪽 부분(동원)만을 사용했으나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1968년경 서쪽 건물(서원)을 매입, 보수하여 1983년까지 사용했답니다.

 

하지만 공화춘은 화교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정부의 화교 정책에 밀려 안타깝게도 폐업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후 현재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2010년 매입해 이곳 짜장면 박물관으로 2012년 다시 태어났습니다.

 

 

제4전시실

 

제4전시실에서는 짜장면의 전성기인 1970년대 중국음식점 풍경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짜장면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였을까요?? 바로 1970년대입니다. 제4전시실에서는 짜장면의 전성기인 1970년대 중국음식점 풍경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1948년 ‘영화 장유’라는 식품회사에서 캐러멜이 첨가된 달콤한 한국식 춘장이 출시되었고, 이후 우리나라는 6.25전쟁 후 정부의 밀가루 소비 장려정책(1964~1977년)과 맞물려 짜장면은 외식문화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답니다.

 

 

제5전시실

 

이곳에서는 현대와 가장 비슷한 모습의 짜장면 모형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제5전시실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현대와 가장 비슷한 모습의 짜장면 모형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유스로거는 오늘날 우리 문화 속에 깊이 스며있는 짜장면의 모습과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답니다.

 

배달통의 변천사

 

이 전시관에서는 배달통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짜장면 배달 아저씨가 들고 오는 배달통과 비슷해 친근함이 느껴졌답니다.

 

6~70년대 짜장면 반죽에 쓰였던 밀가루 포장지

 

게다가 제5전시실에서는 6~70년대 짜장면 반죽에 쓰였던 밀가루 포장지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밀가루 포장지와 많이 다른 모습이죠?!

 

각 시대별로 판매되었던 짜장라면 상품들

 

곧이어 각 시대별로 판매되었던 짜장라면 상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요. 시대별로 전시된 많은 짜장라면들을 만나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짜장라면 가격이 100원, 200원이었다니. 놀랍기만 했습니다

 
과거에는 짜장라면 가격이 100원, 200원이었다니. 놀랍기만 했습니다. 평소 짜장라면을 무척 좋아하는 유스로거는 이 짜장라면의 맛은 어땠을지 생각하자 군침이 절로 났습니다.

 

 

제6전시실

 

1층에 있는 제6전시실에서는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유스로거는 2층에 있는 전시관을 모두 둘러본 후 드디어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1층에 있는 제6전시실에서는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수타 주방과 칼판 주방 등 1960년대 공화춘 주방에서 짜장면을 조리하는 광경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주방장이 수타 짜장을 만들고 있네요. 능수능란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나요?

 

파를 총총 썰고 있는 칼 주방의 모습입니다.

 

파를 총총 썰고 있는 칼 주방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군요. 조리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군침이 절로 돌았습니다.

 

짜장면의 조리법도 적혀져 있었습니다

 

주방 옆에는 이렇게 짜장면의 조리법도 적혀져 있었습니다. 어때요? 짜장면 만들기 참 쉽지 않나요? 유스로거도 집에 가서 빨리 만들어봐야겠네요. 

 

짜장면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그 기억을 거닐다’라는 특별전시전은 올해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제1전시관을 거의 다 봤을 무렵, 특별전시전 안내판을 발견했답니다. 짜장면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그 기억을 거닐다’라는 특별전시전은 올해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특별전시전에서는 1883년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화교들의 과거와 현재까지의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데요. 화교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실제 인천에 거주했던 화교의 추억을 간직하며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보관했던 다양한 생활자료를 볼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짜릿합니다.

 

제 6전시실에는 화교들이 실제로 입었던 옷, 화교 전화번호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제 6전시실에는 화교들이 실제로 입었던 옷, 화교 전화번호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보존된 덕분에 화교들의 옷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답니다. 이곳에서 당시 화교들의 생활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짜장면은 우리 국민 모두가 즐겨먹고 사랑하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음식입니다


지금까지 짜장면 박물관에 대해서 소개해보았습니다. 짜장면은 우리 국민 모두가 즐겨먹고 사랑하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음식입니다. 춥고 배고팠던 6.25시절부터 지금까지 짜장면은 우리들의 곁에 항상 있었습니다.

 

이 소중한 추억을 가진 짜장면이 어떻게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말 가족 또는 연인의 손을 잡고 인천 차이나타운 속 짜장면 박물관에 방문하셔서, 짜라짜짜~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맛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새롭게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