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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인사이드

대한민국 석유의 역사를 돌아보다

대한민국 석유의 역사를 돌아보다석유 역사


“석유는 언제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땅에 누가 처음으로 석유를 들여왔을까요? 또, 석유 산업은 언제부터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석유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자, 그럼 시대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일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함께 살펴봐요!

 


1. 19세기 말: 서양기름의 등장


1880년, 조선에서는 개화파 사신들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사절단 중 이동인이라는 승려가 처음으로 석유를 들여왔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석유, 석유램프, 성냥이었다고 해요.

 

이후에 석유가 대량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조선이 미국과 수교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는 일반 사람들도 점차 기존에 써오던 들깨기름 대신 석유(정확하게는 등유)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기존보다 사용이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아무래도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었겠죠? ^^

 

더욱이 개화가 진행될수록 자동차의 수가 늘어났고, 이에 미국의 스텐다드 오일이라는 대규모 회사가 본격적으로 휘발유를 들여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석유

 


2. 일제강점기: 산업용 석유보급의 시작

 

1920년대에는 스텐다드 오일의 독점을 깨고 미국의 텍사스 오일과 영국의 쉘이라는 회사가 들어와 3개의 회사가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30년대에는 일본이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한반도를 전쟁물자 보급기지로 활용했고, 이를 위해 직접 원산에 정유공장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에 산업용 석유를 보급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이 원산 정유공장은 이후에 울산으로 이전할 계획도 있었다고 하네요. 실제로는 일본이 패망하면서 계획을 온전히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일부는 옮겼다고 합니다.



3. 광복 직후: 서양 열강의 시장지배

 

해방 직후에는 미군의 통치하에 군용석유를 공급하다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난 후에야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SCO)를 세워 직접 석유를 저장, 관리, 판매하게 됩니다.

 

그러나 곧 다시 미국의 스텐다드 오일, 칼텍스, 쉘이 판매와 유통을 전담하였고, 전국에 대리점을 설립했습니다. 이 당시에 석유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부를 축적한 미국석유자본이 중동에 진출해서 많은 석유를 추출했고, 선진국들의 석유 소비량 또한 증가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3대 메이저 석유 회사의 한국 시장 독점이 지속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이전에 설립이 중단된 울산정유공장 복구, 확장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동도 못 한 채로 유엔의 유류보급창고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석유 탱크

 


4. 1960년대: 대한석유공사의 탄생

 

1962년은 대한민국의 석유산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전쟁이 끝났고, 사회ㆍ 정치적인 상황도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정부가 첫 번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해였기 때문이죠.

 

경제 개발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석유의 공급이 필요했고, 이에 정부도 정유공장의 건설을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세우고 울산정유공장을 가동시키게 됩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정유공장을 가동하면서 경제정책의 방향도 크게 달라졌는데, 이전에는 한정된 에너지원을 절약하기 위해 소비억제정책을 펼쳤다면 석유 공급이 안정화되면서부터 공업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반 시민의 주 에너지원도 석탄에서 석유로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석유 공장

 


5. 1970, 80년대: 석유 산업의 자주독립

 

정부도 정유공장 운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대한석유공사는 기존의 계획과는 달리 외국자본을 도입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 메이저 회사들에 투자유치교섭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고, 그 중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걸프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후에 정유공장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급속도로 확장되었고, 꾸준하게 기술을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는 아시다시피 1, 2차 석유파동이 발생합니다. 원유가격이 폭등하자 국내 석유가격도 덩달아 폭등하여 국내 경제에 위기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하였고, 시간이 흘러 80년에는 걸프사가 투자를 철수하면서 한국은 드디어 순수하게 국내자본으로 이루어진 정유 산업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갈매기

 

 

6. 1990년대: 석유의 자유화, 개방화


90년대에는 법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95년에는 주유소 간 거리제한이 폐지되었고, 97년에는 석유가격 자유화와 석유 수출입 자유화가 시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정유산업이 활성화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신규 주유소가 우후죽순 급증하여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치열한 가격경쟁과 무리한 판촉서비스로 인해 파산하는 개인 주유소들도 종종 발생하였고, 이때부터 정유사들도 치열하게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IMF라는 국가적인 위기가 찾아와 정유산업의 수익성에 큰 타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석유산업은 국내를 넘어서서 점점 더 세계를 향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로 지난 해 대한민국 수출품목 1위가 ‘석유제품’이라는 사실만 봐도 대한민국 정유산업의 경쟁력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정유산업의 역사를 파헤쳐 보면서 한국의 근대사를 논할 때 석유와 정유산업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임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석유의 역사를 읽어보면서 여러분의 삶과 석유가 얼마나 깊고 또 오랫동안 함께해 왔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