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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감정노동자,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볼까요? 오늘은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늦잠을 잔 탓에 밥도 먹지 못하고 급하게 준비한 뒤 택시를 타고 시내에 도착합니다. 다행히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빵을 산 뒤에 약속장소인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합니다. 친구들이 다 도착하자 영화 표를 발권한 뒤 영화를 즐겁게 관람합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집을 비운 사이 도착한 택배를 경비원에게 받아 집으로 돌아갑니다.


위 상황에서 만난 택시기사, 카페 직원, 영화관 직원 그리고 경비원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감정노동자’ 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와 같은 친절한 말을 건네고 계신가요?



감정노동자? 감성노동자? 그들은 누구일까요



뉴스나 인터넷들을 통해서 ‘감정노동자’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감정노동자는 ‘서비스직을 본업으로 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고객들을 항상 밝은 얼굴로 상대해야 하는 노동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느냐며, 일각에서는 ‘감정노동자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직종과는 다르게 본인의 감정을 억누른 채로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감정노동자들의 사례가 언론에 자주 언급되면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 10월 한 아파트 경비원은 아파트 주민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자살시도 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결국 그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가 경비원에게 행해왔던 음식물 쓰레기 심부름 등의 인격모독 행위는 수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2015년 4월에는 객실 내 승객들의 성희롱적 발언과 욕설로 우울증에 걸린 승무원을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하는 판결도 내려진 바 있습니다.



이렇게 감정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은 학문적으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 불립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일종의 우울증으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지는 병입니다. 겉으로는 절대 감정을 드러낼 수 없기에, 혼자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 등으로 앓다가 식욕감퇴, 사회부적응은 물론 심각하면 자살 시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감정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유스로거는 일반적으로 감정노동자라 분류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영화관 직원, 카페 아르바이트, 백화점 대리 주차 요원(발레파킹), 쇼핑몰 고객상담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답니다.


유스로거

안녕하세요. 먼저, 민감한 사안임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자기소개를 부탁 드릴게요.


영화관 직원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 시내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주로 매표업무와 매점업무를 담당하는 21살 영화관 매표원입니다.


카페 아르바이트

저는 번화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음료 제조와 계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대리주차원

저는 울산의 한 백화점에서 우수고객(VIP)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주차장 대리주차(발레파킹)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쇼핑몰 고객상담원

인터넷 쇼핑몰 고객상담센터에서 인바운드(고객들이 전화로 문의나 불만사항을 이야기했을 때 답변해주는 일) 업무를 진행하는 고객상담원입니다.


유스로거

다들 각 분야에서 1년 이상의 경험을 갖고 계신 만큼 다양한 경험도 많으실 거라 예상됩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백화점 대리주차원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발레파킹 도중 발생한 경우가 아님에도, 쇼핑 후 차의 흠집을 발견하고는 저희에게 무조건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였어요. ‘네가 발레파킹 하나도 제대로 못 하니까 이런 일이나 하고 있지.’ 혹은 ‘너희 같은 직원들이 백화점의 명예를 깎아먹는 것이니 부끄럽게 여겨라.’ 등의 폭언을 일삼았고 그 충격으로 어떤 직원은 일을 그만둘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심각했습니다.


CCTV와 블랙박스 판독 결과 발레파킹 도중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고객은 사과 한마디 없이 돌아갔죠. 고객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고 직원 평가도 우수했으며 일에 애착을 갖고 일하던 저였지만, 그 일로 인하여 일에 대한 회의감도 적지 않게 느꼈습니다.


영화관 직원

회사 규칙에 ‘할인쿠폰 사용 시에는 적립 불가’, ‘팝콘 구매 시 추가 그릇 증정 불가’ 등의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아 힘들어요. 또 영화가 끝난 후 좌석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는 분에게 ‘모든 분들이 이용하는 좌석이 아닌, 화장실에서 처리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지만, 내 돈 내고 이용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당당하게 기저귀를 갈고 그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시는 분도 있었어요. 



카페 아르바이트

매장이 번화가에 있어, 항상 손님이 많아 주문한 음료가 바로 나오기는 힘들어요. 한번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약속에 늦었다며 음료를 저에게 부어버린 손님도 있었어요. 물론 바쁜 와중에도 감사하다고, 수고하라고 따뜻한 한마디 건네는 분들을 만나면 힘이 나지만, 인간적인 대우조차 해주지 않는 분들을 만나면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요.


쇼핑몰 고객상담원

아시겠지만, 저희의 업무는 고객들의 불만이나 문의사항 등을 접수하는 일입니다. ‘왜 배송이 안 오느냐, 환불 처리 후 돈이 안 들어온다, 물건이 마음에 안 든다’ 등의 일상적인 불만부터 ‘고소해서 콩밥을 먹이겠다’와 같은 협박성 전화까지, 다양한 경우를 만나죠. 심지어는 ‘시간 되면 잠시 만나보자’와 같이 입에 담기 힘든 성적 비하 발언을 비롯한 성희롱적 발언도 많이 접합니다.



유스로거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상황, 정말 심각하네요. 그렇다면 반대로 손님들로 인해서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나요?


영화관 직원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밀려드는 주문을 받으며 고객들을 응대해야 하죠. 일이 끝나고 난 후에는 정말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힘들어요. 하지만 그 중에도 ‘밥은 챙겨 먹고 일 하냐’, ‘어린 것 같은데 수고가 많다’며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에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쇼핑몰 고객상담원

저는 조금 특별한 경험이 있어요. 전화를 걸었던 고객 분이 통화가 끝날 때쯤 본인도 다른 고객상담 콜 센터에서 일한다며, ‘일이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힘내서 열심히 해보자’는 응원을 해주신 일이 있어요. 얼굴 한번 못 본 사람에게 받은 응원임에도, 그날 하루는 왠지 모르게 힘이 나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카페 아르바이트

저희는 직접 다양한 음료를 만들다 보니 가끔 실수를 하기도 해요. 가끔 자신이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를 받고도 자신이 복잡하게 주문한 것이 잘못이라며 따뜻하게 웃는 분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요.


감정노동자들과의 대화, 잘 보셨나요? 유스로거가 만났던 감정노동자들은 모두가 팁이나 선물 같은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질뿐더러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감정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우리 사회의 작은 노력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 사회 전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감정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또한 여성의 68%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감정노동자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가족, 또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겠지요.


실제로 국회에서는 2014년 ‘감정노동자 보호 법안’이 발의되었고, 2015년 3월에는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이하 감정노동네트워크)’가 출범하였습니다. 노동, 법률, 여성, 의료 등 24개 단체가 참여해 구성된 ‘감정노동네트워크’는 홍보 캠페인, 토론회, 실태조사 등을 목표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 그리고 감정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움직임들에 대해서 잘 읽어보셨나요? 우리가 무심코 던진 날카로운 한마디와 눈빛이 그들의 마음과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친절이 그들에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 아들,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