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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그린 리모델링, 아껴 쓰고 다시 쓰다



그린 리모델링 건축



건축(建築)의 사전적 의미는 짓고 쌓는 행위입니다. 환경을 이용해 물리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종의 환경 파괴 행위이죠. 그래서 현대 문명이 직면한 환경 위기를 건축적으로 접근해보고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인데요. 마찬가지로 최근 자주 언급되는 ‘지속 가능한 개발’도 서로 반대 개념인 ‘경제 발전’과 ‘환경 보전’이 나란히 놓인 경우입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미래 세대가 이용할 환경과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개념으로 1987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ECD)가 도쿄 선언을 통해 정의했습니다. 



결국, 건축이나 경제 개발이 기존의 자원을 덜 파괴하는 동시에 발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인데요. 모든 것을 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닌 기존에 지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리모델링(혹은 리노베이션)’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중요한 방법입니다. 최근에 나온 ‘그린 리모델링’의 개념은 ‘다시 쓰는’ 리모델링과 ‘아껴 쓰는’ 친환경적인 ‘그린’의 개념을 합친 것으로 일종의 ‘아나바다’ 건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쓰는 건축



이제 우리 도시를 둘러볼까요? 많은 아파트와 빌딩 숲, 거대한 오피스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기존에 지어진 건물의 철거와 폐기물 처리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데요. 세계 각지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양의 절반 정도가 건설 폐기물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회가 급변하고 공간에 대한 요구도 새롭게 변화하면서 도시 곳곳에 버려진 집과 공간들도 많아지게 됐는데, 버려진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새로운 수요에 맞춰 친환경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리모델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원래는 오래돼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리 개축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수리뿐 아니라 기존 건물의 용도를 바꾸어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껴 쓰는 건축



‘친환경 건축’이란 말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단열을 위해 건물 벽을 지나치게 두껍게 하고, 지붕 위에 올려진 태양열이나 태양광 집열판만을 떠올리는데요. 혹은 창을 작게 내서 답답한 건축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죠. 또, 무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졌었습니다. 이는 아직 국내 기술과 인식이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인데요. 



최근 기술이 발전하면서 단열·채광·환기·에너지 절감 등이 최초 기획이나 설계 과정과 통합되고 디자인 자체가 에너지 절약 시스템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즉 에너지를 생산하는 ‘엑티브하우스’가 아니라 절약하는 ‘패시브하우스’까지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설계 기획부터 자연 요소를 디자인 요소와 결합해 통합된 건축을 하는 것입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선 먼저 ‘순환하는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전통 한옥이 대표적인 예인데, 창호지와 흙벽은 작은 틈과 장지문으로 바람과 빛이 순환됩니다. 그래서 자연이 함께 순환할 수 있는 마당을 둬야 하죠. 때문에 최근 많이 사용하는 통유리벽의 거대한 창보다는 창의 기본적인 기능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이 옷을 입어 신체를 보호하듯, 건물에도 옷을 입힐 수 있는데요. 외벽에 또 외벽을 덧대는 것을 ‘이중외피’라고 하는데, 이것은 환기량을 조정하거나 소음과 공해를 걸러낼 수 있습니다. 최근엔 파사드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외피가 설비로부터 자유로워서 독특한 디자인도 가능합니다. 이외에도 외단열공법이나 고단열 삼중유리의 사용, 태양열과 지열 에너지원의 활용, 빗물 재활용시스템, 축열재 벽면과 옥상 녹화 등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 센터


▲ 라파엘센터<이미지 출처: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홈페이지>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라파엘센터(설계: 김승회 서울대학교 교수+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성북구 성북동 1가)는 그린 리모델링의 좋은 예입니다.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좁은 방으로 가득했던 고시원 건물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 의료 시설로 바꾸는 동시에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든 거죠. 부족한 예산과 협소한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이 없는 공간을 최대한 만들어 많은 사람이 머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주말에 사용되는 진료공간을 주 중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가변적 공간을 두었습니다. 특히 기존 외벽에 단열재를 추가하고, 치장 벽돌로 마감하여 에너지 성능을 높였는데요. 돌출된 처마를 붙여 외부 햇볕을 차단하고 처마 안쪽으로는 다양한 색깔을 넣어 디자인까지 독특하게 했습니다. 고단열 창틀과 로이복층유리 창호를 적용하였고, 전체적으로 창 면적을 줄여 에너지 성능을 개선했습니다. 이를 통해 냉난방에너지 35.42%를 절감하는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현재 정부에서도 그린 리모델링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낭비 예방과 쾌적한 환경 조성을 지원하는 국토교통부의 정책사업으로 추진할 정도인데요. 아늑한 공간으로의 재탄생과 함께 에너지 절약까지 실천할 수 있는 그린 리모델링,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