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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①] 정동; 멋진 신세계, 꽃이 피다 (上)

 

 

불과 몇 년 전까지 명동 사보이호텔 근처에 명동 씨네콰논(CQN)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일본영화 전용관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영화관에서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것이 1995년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메가박스니, CGV, 롯데시네마니 하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지금처럼 우후죽순 등장하기 전이었다. 요즘은 영화관도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영화관 부대시설이라고 해봐야 팝콘과 음료를 파는 것이 전부였었고 영화관 이름도 꼭 무슨 극장 하는 식으로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 동네 영화관 건물 밖에 걸려있던 영화 포스터였다. 요즘처럼 고 화질의 대형사진을 출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손으로 붓으로 직접 그린 영화 포스터가 밖에 걸려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퍽 멋있게 느껴졌다. 지금 그 당시의 포스터를 보니 섹시한 여전사의 대명사 안젤리나 졸리가 꼭 푸근한 아줌마처럼 그려지기도 했고,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과 로즈가 얼굴을 찡그리며 울고 있기도 했다.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1998년 영화 <쉬리>의 포스터는 여전히 기억나는데, 한석규와 마주 보고 있는 최민식의 입꼬리가 꼭 배트맨의 라이벌 조커처럼 올라가 있어서 영화를 보기도 전이었지만 최민식이 그처럼 얄미울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일까, 세련되지 못한 단어로 유치 찬란하게 영화를 홍보하는 글귀가 포스터 한 켠에 쓰여 있기도 했는데 꼭 그런 글귀는 커다란 크기의 궁서체로 새겨져 있어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곤 했다. 이제는 모두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지만 90년대의 기억이란 대개 그러했다.

 

그렇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이라는 이름 아래 대형 영화관이 점점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고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영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문화 수준도 높아지고 성숙해져만 갔다. 한 번에 수백 명씩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은 기본이고 단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를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변해가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빠르고 즐겁게 영화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최신의 변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예전처럼 다소 불편하더라도 작은 규모의 영화관에서 적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영화관 규모가 커진 만큼 원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관객과 함께 같은 영화를 봐야 했고, 그 많은 사람이 똑같은 영화를 보며 똑같은 장면에서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언젠가 사람들로부터 입소문이 굉장히 좋은 슬픈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극 중 상황은 굉장히 황당하지만, 그 이면은 슬프고 안타까운 역설적인 장면이라 인상을 쓰며 영화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내 주변에서는 그저 즐거워서 킥킥대며 웃는 것이다. 그런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한 뒤로 나는 보고 싶은 영화를 대형 영화관에서 보는 일은 단념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서울 내에 있는 조그만 규모의 영화관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규모가 꼭 작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서 발걸음이 뜸한 영화관도 환영이었다. 그래서 대학로에 하나, 신촌에 하나, 서대문에 하나 하는 식으로 하나둘씩 마음에 드는 영화관을 찾아냈다. 최근 서울실버전용극장으로 새롭게 재개발된 서대문 드림시네마는 1963년 문을 연 화양극장이 이름을 바꾼 곳이었는데, 500석 규모의 큰 단관극장이지만 늘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다른 관객이 한 명도 없어서 그 커다란 극장에서 늘 나만 영화를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런 영화관 중 가장 마음에 쏙 들던 곳은 명동 씨네콰논이었다.

 




씨네콰논, 자이니치(在日) 태생의 이봉우 씨가 일본에서 씨네콰논이라는 영화 기획사를 운영했고, 2005년 한국지사를 설립하며 영화관을 만들었던 것이 명동 씨네콰논의 태생이었다. 그 덕분에 씨네콰논에서는 다른 영화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없는 일본 영화들이 상영되었고, 입소문을 조금씩 타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위치가 도저히 영화관이 있을 법한 곳에 있지 않았고 제대로 된 간판도 없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던 것이다. 명동역에서 내려 사보이호텔 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왼쪽으로 높고 좁은 건물이 하나 서 있었는데 음식점과 귀금속 가게 등이 입점한 이 건물 꼭대기 몇 층을 씨네콰논이 쓰고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보면 잘 갖추어진 시설과 상영 중인 다양한 영화에 놀라게 되는데, 요즘 인기 있는 다른 대형 영화관과 비교하면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 조용하게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격인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나 씨네콰논은 재정난을 이유로 2008년 6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게 된다. 좌석 수가 많지 않은 극장 규모에서부터, 거대하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스크린, 비밀스럽게 숨겨진 듯한 위치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 내게 최고의 영화관으로 기억되는 씨네콰논이 문을 닫기 일 년 전 즈음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닫힌 혼란의 공간, 밀양


2007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의 원작은 <서편제>로 유명한 故 이청준 씨가 1985년 발표한 단편소설 <벌레이야기>다. 남편의 죽음 뒤 아들 준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내려온 신애(전도연)는 피아노 학원도 시작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한다. 여기에 능글맞은 듯 유쾌한 듯 신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 종찬(송강호)이 엮이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안갯속으로 흘러가는데, 그러던 중 신애에게 아들 준이 유괴당해 죽게 되는 괴로운 일이 이어진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뒤 절망하는 신애가 찾은 구원과 희망은 놀랍게도 한 번도 가지 않던 교회였다. 죽은 아들 준의 사망신고를 하며 고통스러워 하던 신애는 길거리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 플래카드를 우연히 보게 되고 이끌리듯 교회를 찾는다. 원래 특별한 생각은 없었으나 예배당을 찾은 신애는 목사의 외침과 사람들의 흐느낌 속에 그동안 쉽사리 꺼내 보이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신음과 울부짖음으로 그녀 몸 안에 쌓여있던 아픔을 세상에 토해낸다. 이윽고 목사의 손이 신애 위에 닿았을 때 신애는 울음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시 태어났다”고.


나는 이 장면에서 약간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씨네콰논의 좁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때 내 바로 앞에는 40대로 보이는 여성 세 명이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그 중 한 여자가 신애와 똑같이 실제로 울부짖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름 아닌 현실 속에서 말이다. 그분이 영화 속 신애와 똑같은 경험과 아픔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신애가 구원의 실마리로 종교의 믿음을 찾은 것에 공감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끝날 때까지 내 앞의 그분은 쉽사리 울음과 신음을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큰 소리를 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옆 사람들이 다독이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분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는데, 단순히 장면이 슬퍼서라기보다 그분 내면에 어떤 생채기가 분명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애절하게 느껴졌다. 영화 속 신애도, 내 앞의 그분도 각자 다른 이유로 몸속의 응어리를 입 밖으로 세상에 토해냈고 그게 그들이 혼란과 혼돈에 마주하며 나름대로 그걸 풀어내는 한 방법이라 여겼다. 그래서인지 덕분에 나는 <밀양>에서 신애가 통곡하는 그 장면만큼은, 실감 나는 생생한 서라운드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로 나오니 여전히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을지로로 걸어 내려가며 나는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영화는 종찬이 신애의 머리를 자르며 햇살이 드는 양지를 비추는 것으로 끝났지만, 여전히 이 영화의 결말이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신애는 구원을 받은 것인지, 종찬은 왜 끝까지 그녀를 떠나지 않은 것인지 나중에서야 인터넷에 올라온 다양한 영화평을 보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 햇살 좋은 명동 거리가 그토록 불편할 수 없었다.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은 단지 영화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쉽게 말하여지지 않는 혼란스러움이 내 몸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자꾸 안으로 맴돌며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신애가 유리창에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고, 교회 야외모임을 방해하기도 하고, 약사를 유혹해 금기를 범하며 나름대로 혼란스러움에 맞서보려 하지만 밀양이라는 공간에 갇혀 시원하게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것처럼 나의 불편함도 밖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계속 나의 몸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어딘가 불편한 것, 정체된 혼란스러운 감정이 꼭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감정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영화 속 밀양이 닫힌 공간에서의 혼란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공간에 갇혀 밖이 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그 벽 너머로 나갈 수 없는 것처럼 혼란이 열리지 못하고 닫혀 버렸을 때 우리의 삶 역시 쉽게 말하여지지 않았다. 영화 <밀양>은 구원이라는 주제와 함께 혼란, 사랑, 분노, 증오와 같은 거대한 감정들이 어떤 선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 때 그 속에 있는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선을 진심으로 넘느냐, 넘지 않느냐는 바로 그 공간에 속한 사람들의 의지였다. 그래서 어떤 공간과 감정이 닫혀있다, 열려있다는 결정하는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었다. 시대가 암울하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렵고 힘든 상황만이 나를 계속 옥죄어오는 있는 상황에서, 나는 진심으로 이를 깨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혹은 나아가고 싶다고 믿는 것은 그렇지 않았던 신애와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결국, 열린 공간에서의 혼란은 겉보기에는 종잡을 수 없는 혼돈과 불투명한 미래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다양한 감정을 발산시켜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100년 전의 정동(貞洞)은 바로 그 점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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