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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⑧] 삼청동길; 인사이드아웃사이드(Inside Outside)(下)

 


아, 삼청동


서울 종로구 삼청동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비슷한 대화를 던지고 있다. 요즘 젊은이 중에 독특한 갤러리와 다양한 카페로 더욱 유명한 서울 명소가 된 삼청동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사실 삼청동은 예로부터 서울 도심 속 매우 특별한 공간이었다. 삼청동은 산, 물, 그리고 사람들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고 하여 삼청동(三淸洞)이라 불렸다. 


삼청동 북쪽에 있는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에 있다 하여 그 지명이 붙여졌는데 조선시대에는 고관대작과 왕족, 그리고 사대부가 거주하는 고급 주거단지였다. 


지금도 북촌에 가면 북촌한옥마을이라고 하여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이는 모두 일본강점기 이후에 세워진 작은 규모의 한옥들이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으리으리한 규모의 한옥이 이곳 북촌에 가득했다. 


북촌에서 내려와 삼청동의 왼편으로 향하면 경복궁이 있다, 왕이 살던 곳이다. 이렇게 왕이 거주하던 궁궐과 고관대작들이 기거하던 북촌 사이에 있는 삼청동은 가운데 놓인 중간 구역이었고 예로부터 중인(中人)들의 공간이었다. 17세기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중인도 양반과 양인 사이의 중간 계급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궁의 꽃과 과일을 담당하던 장원서, 물이 맑고 맛이 좋아 일반인의 사용을 금하고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복정 우물터, 왜군과 여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총포제작을 담당하던 화기도감, 그리고 조선시대 궁정에서 그림을 관장하던 도화서 등 삼청동은 궁과 관련된 중인들의 공간이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전하 아니 되옵니다” 혹은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라는 말이 대변하듯 조선시대는 왕권이 크게 강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이 때문에 언제나 왕과 신하들의 팽팽한 기 싸움이 있었다. 가끔은 절묘한 인용술로 왕권이 높았을 때도 있었지만, 당과 당의 싸움이 치열할 무렵에는 왕의 목소리보다 당과 학파 수장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게 들리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삼청동은 바로 그 치열한 기 싸움의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삼청동은 궁과 북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다소나마 완화하는 공간이었고 완충지대로서의 삼청동은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오고 가며 흘러갔다. 


그 오고 감에는 안과 밖의 경계가 따로 없다. 누구의 편도 특별히 아닌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궁으로 향하다가도 또 시간이 지나면 북촌으로 고개를 기웃거린다. 이쪽에서 보면 왼쪽인 것도 반대에서 보면 오른쪽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삼청동에서 조선의 다양함이 섞일 때에는 구분과 경계가 없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삼청동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함께 섞이고 중첩되어 중간지대로서의 의미를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오늘날 삼청동에는 옛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지만 지나치게 전통적이지 않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경박하거나 과함이 없어 전통과 현대가 기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계속해서 많은 사람을 흡입하고 있다. 그래서 삼청동은 모든 사람이 즐겨 찾고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이곳에서 만들고 담아간다.

 

 


삼청동 인사이드아웃사이드(Inside Outside)


2008년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중 서울아트벨트의 하나인 삼청동 인사이드아웃사이드(Inside Outside) 프로젝트는 이처럼 '여러 요소가 중첩된 공간으로서의 삼청동'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들이 가장 눈여겨 본 삼청동의 특징은 거주자와 방문자 사이의 중간지대로서의 공간이었다. 


2000년 이후 많은 카페와 갤러리가 삼청동에 들어섰고 정말 많은 사람이 이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청동 일대만 찾던 이들이 입소문을 타고 가회동, 안국동, 북촌, 재동, 계동 가릴 것 없이 저마다 사진기를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타인들의 즐길 거리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여전히 삼청동에는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필요했고, 그 합의란 조금씩 많은 생각이 겹쳐지는 삼청동길에 대한 공동의 정의이자, 그들 사이의 소통이었다. 


그 시도는 삼청동과 화개길을 둘러싸고 있는 시멘트 담벼락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서부터 시작한다. 정독도서관 입구 왼편에서부터 시작되는 담벼락은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울퉁불퉁한 돌을 촘촘히 쌓은 것도 있고, 또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시멘트로 높게 쌓아 올린 담도 있다. 


담은 삼청동길을 정의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지금처럼 도시계획이 세련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무렵 이 공간에 집이 들어설 때 너와 나를 구분하는 건 굳게 닫힌 아파트 문이 아니라, 집 사이의 담이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낮게 높게 올라선 담벼락은, 그 안에 사는 사람과 우리 같은 방문자 사이의 경계선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다만 그 경계가 폐쇄적이거나 어둡지는 않다. 담을 기준으로 양쪽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시선을 교환하고 그 시선 속에 서로 더 이해하려는 욕망을 담는다. 이 때문에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쪽에서 보면 내가 안이고 네가 밖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그 반대가 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담벼락을 매개로 같은 생각을 통하고 있는지에 있다. <북두팔성>, <만지는 삼청동지도>, <그대에게 가는 길> 등 삼청동길 곳곳의 담벼락에 조성된 작품들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안과 밖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북촌생활사박물관 근처 계단에 조성된 <안과 밖> 작품을 통해 가장 극대화된다. 위에서 걸어 내려오면 평범한 골목길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밑에서 올려다보면 꼭 타일목욕탕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모습과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어떤 시선으로 이 골목길과 삼청동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느냐, 나아가서는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을 던지는 작가의 의도는, 어떤 시선이든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오히려 안과 밖이 혼재되어있는 이 골목길을 돌아보며, 서로 다른 시선의 혼재, 서로 다른 사람들의 뒤섞임, 서로 다른 공간의 중첩이야말로 삼청동길의 가장 큰 매력임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삼청동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삼청동길에 조성된 인사이드아웃사이드(Inside Outside) 프로젝트는, 이 공간의 특징이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에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사실 모호함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 질감이 깔깔하여 사람들에게 쉽게 안착 되지 못한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혹은 이곳에서 계속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결국, 삼청동은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다. 오래전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 우후죽순처럼 카페가 들어서고, 현대적인 미의 극을 보여주는 갤러리들이 들어서고, 혹은 여전히 가회동과 재동에는 한옥마을이 남아있지만, 수 없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이 모든 것들이 일련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단편적인 점이 아니라 연속되는 선과 면에서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어떤 공간이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의미들이 중첩되어가지만, 삼청동은 그 과정이 한 점이 아닌 길고 느린 선이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더해지고 옛것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독특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한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삼청동은 그 흐름을 절대 쉽게 그리고 빠르게 보여주지 않는다. 흐름은 직선일 때 그 세기와 위치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혹은 어디까지 온 것인지 알기 어렵다. 


골목에 부딪혀 멈추기도 하고, 가끔 막다른 곳에 다다라 되돌아오기도 해야 하고, 오르막도 있고, 가파른 내리막도 있고, 그 너머를 알 수 없이 높게 솟아오른 담벼락에 튕겨 나오기도 하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언덕에도 오르고, 이처럼 굴곡이 있을 때 비로소 그 흐름이 어느 정도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삼청동은 골목이다. 지나치게 전통적이지도 현대적이지도 않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이 되어 골목 사이를 누빈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나이 많은 이들의 문화가, 서로 다른 상상 속의 발걸음들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내일로 흘러가고 있다. 


강남 가로숫길처럼 곧게 뻗은 거리와는 달리 이곳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굽이굽이 돌아간다. 돌아가기 때문에 속도가 느릴 수 있고, 느리므로 더 많은 사람이 편안하고 손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또 다른 이들의 생각을 얻어간다. 그 이야기의 오고 감이 있기에 이곳은 바다를 보았을 때의 공포와 거대함 대신 강물 같은 고요함과 애잔함이 묻어난다. 


막다른 삼청동 골목길을 마주했을 때 당신에게도 이곳을 유유히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들려올 것인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삼청동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삼청동처럼 강물이 되어 물과 꽃과 강과 바다와 별과 그리고 나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꿈을 꾸며......







황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