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9월 20일, 독일을 떠난 우편 증기선 드레스덴 호는 평소처럼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배에 탑승한 손님들 또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북해의 바다를 즐기고 있었지요.
<이미지 출처 : www.dieselduck.net>
승객 명부에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발명가 루돌프 크리스티안 카를 디젤(Rudolf Christian Karl Diesel 이하 루돌프 디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디젤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레스덴 호의 갑판에서 가지런히 정리된 루돌프 디젤의 개인 소지품이 발견됩니다.
현재 우리가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는 기계 엔진 중 하나인 디젤 엔진의 발명가이자 불운한 선구자로 불리는 루돌프 디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3개 국어를 말하는 아이
<이미지 출처 : www.dieselduck.net>
루돌프 디젤은 독일인 사업가 부부인 아버지 테오도어와 어머니 엘리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이었지만 파리에서 만나 결혼했고, 루돌프 디젤 또한 파리에서 태어났지요. 루돌프 디젤의 총명한 두뇌는 어린 시절부터 빛을 발해서 10대 이전부터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었다고 해요. 당시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으로 인해 루돌프 디젤은 부모님의 고향인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로 가게 되었고, 뮌헨 공과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기계공학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카를 폰 린데, 이미지 출처: cnx.org>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루돌프 디젤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요. 바로 스승인 카를 폰 린데와의 만남입니다. 린데는 저온공학의 전문가였습니다. 그의 열역학 수업을 들으며 루돌프 디젤은 새로운 동력 기관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게 됩니다. 당시 린데는 ‘공기액화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공기의 팽창을 통해 냉각, 액화시키는 방법이었는데요.
루돌프 디젤, 새로운 엔진을 꿈꾸다
재미있는 점은 디젤 엔진의 원리가 스승인 린데의 이론과 많은 부분에서 정반대의 원리라는 점입니다. 린데가 공기의 팽창을 중심으로 연구했다면, 루돌프 디젤은 ‘압축’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켜나간 것입니다. 공기를 압축시켜 온도를 높인 뒤 거기에 연료를 뿜어 자연 발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디젤 엔진의 원리입니다. 혹자는 루돌프 디젤이 린데를 만나지 못했다면, 디젤 엔진의 발명도 늦춰지거나 없었을지 모른다고 전합니다.
린데의 가르침 아래 루돌프 디젤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동력 기관에 대한 발상이 떠올랐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발상일 뿐이었습니다. 마르타 플라세와 결혼 후 루돌프 디젤은 디젤 엔진이 아닌 암모니아 가스 엔진의 연구를 먼저 시작합니다. 하지만 7년 동안의 긴 연구는 보람도 없이 실패로 끝났다고 해요. 이 경험으로 인해 아우크스부르크가 지겨워진 루돌프 디젤은 베를린으로 이사해 새로운 연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1893년 ‘합리적인 열기관의 이론과 구조’라는 이름의 설계를 특허 등록합니다. 이 특허는 디젤 엔진의 토대가 된 이론이었지만 실제로 엔진을 만들기에는 아직 부족했습니다.
새로운 엔진의 탄생
<1893년 루돌프 디젤이 고안한 디젤 엔진의 초기 모습, 이미지 출처 : www.dieselduck.net>
같은 해 여름에는 새로운 엔진의 첫 시험이 열렸습니다. 비록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경험을 통해 루돌프 디젤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동력 기관이 실현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이후부터는 힘든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해요. 설계 변경과 개조가 이루어질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그때마다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지요.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해결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루돌프 디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루돌프 디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86년의 마지막 날, 3년 전에 만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엔진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만들어진 엔진 중 가장 높은 효율을 내는 엔진이었습니다. 엔진은 완성되었지만 마땅한 이름이 없어 고민하던 루돌프 디젤에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당신이 발명했으니 당신 이름을 따서 디젤 엔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디젤 엔진의 탄생입니다.
디젤 연료는 디젤 엔진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디젤 엔진은 루돌프 디젤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렇게 루돌프 디젤의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용될 것입니다.
독점 대신 기술 공개를 택하다
‘놀라운 효율을 가진 새로운 엔진이 등장했다!’ 디젤 엔진의 소문은 삽시간에 전 유럽과 미국의 산업계에 퍼졌습니다. 세계 각지의 회사들은 높은 열효율의 디젤 엔진을 원했고, 앞다투어 루돌프 디젤에게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고 디젤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루돌프 디젤은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사교계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었지요. 이때 디젤의 나이 40세. 불혹의 나이에 루돌프 디젤은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사실 루돌프 디젤이 디젤 엔진을 혼자 완성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트럭과 디젤 엔진으로 유명한 독일의 회사 만(MAN- Maschinenfabrik Augsburg-Nürnberg)의 전신인 아우크스부르크 기계제작소는 루돌프 디젤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당시 회사의 감독이었던 하인리히 폰 부츠는 디젤 엔진이 완성될 때까지 5년이란 시간 동안 루돌프 디젤을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마침내 디젤 엔진은 완성이 되었을 때, 아우크스부르크 기계제작소는 독점 판매권을 원했습니다. 만약 디젤 엔진의 독점 판매권이 한 회사에 돌아갔다면, 지금쯤 세계의 역사는 크게 바뀌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루돌프 디젤은 기술의 독점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술이란 독점할 경우 개발되지 못하고 결국은 고인 물처럼 썩어 간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루돌프 디젤은 계약을 파기하고 디젤 엔진의 기술을 공개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서 엔진 설계의 특허를 출원합니다.
시대를 앞서간 발명가의 죽음
<루돌프 디젤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이미지 출처 : autokult.pl>
기술 공개의 대가는 뼈아팠습니다. 곳곳에서 디젤 엔진의 설계를 조금만 고친 후 특허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 상대였던 가솔린 및 증기 엔진 제조업자들의 중상모략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문제는 루돌프 디젤이 세운 회사 내부에서도 벌어졌습니다. 디젤 엔진으로 인해 벌어들인 돈을 둘러싸고 간부들 간의 암투와 부정부패가 벌어졌습니다. 죽기 전의 루돌프 디젤에게는 많은 특허 소송에 걸려 있었고, 이러한 일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시 1913년 9월 20일로 돌아가 볼까요? 루돌프 디젤은 드레스덴 호를 타고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향합니다. 영국에서 열리는 디젤 엔진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리고 열흘 후, 노르웨이 근처의 북해에서 디젤의 유품이 발견됩니다. 루돌프 디젤의 죽음은 아직도 호사가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많은 의문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음모론은 루돌프 디젤이 독일 비밀경찰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음모입니다. 당시 독일 정부는 U보트에 디젤 엔진을 사용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루돌프 디젤은 가장 유력한 적국인 영국에 디젤 엔진을 만드는 공장을 준공하려 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독일 정부가 루돌프 디젤을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루돌프 디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벌써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루돌프 디젤은 말년에 디젤 엔진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고통받았지만 그의 발명품인 디젤 엔진은 오늘날에도 여러 산업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나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디젤 엔진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데요. 변화를 거듭하며 친환경, 고효율 연비를 장점으로 갖춘 디젤 엔진. 루돌프 디젤은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디젤 엔진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기억될 것입니다.
이번 화에서는 루돌프 디젤의 삶을 소개해드렸는데요. 다음 화에서는 그의 발명품인 디젤 엔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발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다음 화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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