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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⑥] 동십자각 지하보도; 지하도(地下圖)(下)

 

 

동십자각 지하보도

2010년 8월, 오래도록 공사 중이었던 광화문이 드디어 그 모습을 보였다. 물론 새롭게 광화문이 공개되고 나서 현판에 금이 가는 등 소란이 조금 있기도 했지만 경복궁에서부터 광화문, 육조거리를 지나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통로가 일직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었다. 그 광화문을 왼편에 두고 안국동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동십자각이 외롭게 서 있다. 동십자각 근처에는 폭이 100m가 넘는 지하보도가 하나 놓여져 있는데, 종로 거리에서 이 지하보도를 지나 삼청동 방향으로 건너갈 수 있다. 이 곳은 도로가 넓음에도 횡단보도가 따로 존재했고 바로 그 곁에 동십자각 지하보도가 위치해 있다. 서울시가 2007년 도시갤러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한 동십자각 지하보도 개선 사업은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통해 어두침침했던 지하보도를 밝게 바꾸는 프로젝트였다.

 

 

연세대와 미국 미시건 대학에서 건축 및 도시계획을 전공한 이영조 작가가 진행한 이번 「동십자각 지하보도; 지하도(地下圖)」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동십자각의 십자를 기본 패턴으로 차용하여 빛과 패턴의 조화로 지하보도를 새로운 디자인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벽면은 강화유리를 사용하고, 천장은 바라솔로 마감하여 한층 안정성과 빛의 파장을 원활하게 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하도 양쪽 벽면의 패턴이 다른 점이었다. 한 편은 강화유리 너머로 빛을 투과하였고 다른 한 편은 벽면타일을 배치하여 십자 무늬를 패턴화하여 삽입하였다.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했던 동십자각 인근 지하보도를 새로운 디자인 공간으로 바꾸려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며,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서로 다른 역사와 시간을 연결하는 이곳

동십자각 지하보도의 진정한 가치는 동십자각 무늬를 패턴으로 그려넣은 디자인적인 요소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 지하보도는 경복궁 사거리를 중심으로 사간동, 삼청동, 종로를 연결하고 있다. 마치 고려대학교 지하통로처럼 계단을 걸어 내려가 지하보도를 걸어 나오면 전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지하보도로 내려가기 전 보았던 이곳은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일한 공간으로 여겨졌으나, 직접 내가 그 통로를 걸어가보면 또 다른 지역과 사람과 공간이 나온다는 사실은 사뭇 재미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숨겨진 이야기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더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 동십자각은 슬픈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동십자각은 원래 서십자각과 함께 경복궁의 동과 서를 지키는 망루였다. 지금처럼 외롭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경복궁에서부터 동십자각까지 담장이 연결되어 있었고 예전에는 이 망루를 오르는 계단도 존재했다. 당시의 오래 된 사진을 통해 본 동십자각은 부속실까지 갖춘 번듯한 장소였다. 그 경복궁의 모서리에서 수 많은 군졸들이 이곳에 오르내리며 그 가장자리를 지키고 또 경복궁을 고궁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완성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동십자각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슬픈 역사의 비극을 맞는다. 1930년대가 되어 일제총독부는 종로 일대의 길을 근대화하고 넓히는 작업을 시작한다. 지금의 동십자각에서부터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창덕궁 삼거리, 원남동 사거리, 그리고 이화사거리를 지나 동대문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길로 크게 닦이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서십자각은 그 흔적조차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동십자각 역시 경복궁과 연결되어 있던 담장과 계단이 사라진 채 지금의 자리로 외로이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분단과 단절의 비극은 동십자각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에 창덕궁과 종묘는 담장을 이웃한 채 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일본총독부의 이런 사업 때문에 그 가운데가 뚫려 서로 갈리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그것이 오늘 날 수많은 자동차와 인파가 지나다니는 율곡로의 초기 모습이다. 오늘 우리가 편안하게 그리고 큰 의식 없이 지나다니는 이 율곡로 너머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단절과 끊어짐의 아픔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동십자각은 지하보도는 이렇게 군데군데 잘리고 끊어지고 부수어졌던 우리의 아픈 기억을 연결하는 너른 통로이기도 하다. 다시 갑작스럽게 헐어 부수어진 담장을 복원하거나 경복궁과 동십자각을 연결하거나, 다시 종묘와 창덕궁을 이을 수는 없지만 동십자각 지하보도는 최대한 손을 뻗어 이 사이의 공간들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에게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이 공간들의 아픈 기억이 더 이상 희미해지지 않게 말이다.

 


그곳엔 사랑이 필요했네

비극의 시간을 생생하게 겪었던 동십자각을 뒤로 하고 지하보도를 건너면 많이 현대적으로 변한 종로와 안국동, 그리고 저 멀리 인사동이 나온다. 이 지하보도는 단순히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역사의 비극을 십자무늬의 패턴으로 상기하고 나아가 근대와 현대를 연결하고 있다. 동십자각 지하보도를 통해 연결되고 이어지고 소통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동십자각 지하보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바로 사람의 부재다. 나는 잿빛 하늘로 가득한 여름 어느 날 동십자각을 바라보며 한참 이 거리에서 서 있었다. 그러나 내가 머물렀던 몇 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이곳을 지나가지 않았다. 사실 동십자각 주변에는 이미 횡단보도가 있어 누군가 이 통로를 통해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지하보도로서의 역할은 유명무실해진 것이 사실이다. 공간도, 공간의 의미도 그것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더 깊게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애정이 없다면 그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해가곤 했다. 동십자각 지하보도에 필요했던 것은 단지 이곳을 걸어 다니며 여기가 어떤 장소였고, 어떤 역사 속 일들이 일어났는지 겉으로 아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하보도는 사람이 그곳을 걸어다녀야 비로소 지하보도라고 부를 수 있다. 그곳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오늘 내가 이 통로를 걷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왜 이 지하보도는 이곳에 존재해야만 하는지 그 의미를 더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하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동십자각 지하보도를 비로소 완성시킨다.

 

 

우리들의 그런 노력은 다른 말로 ‘사랑’ 이라는 단어로 쓰여진다. 일상 속에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 곳곳에 남아있는 의미를 서툴게, 더듬더듬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사랑이라는 단어로 쓰여진다. 서울 곳곳을 돌아보자. 수 년 전부터 도시가 예술작품이라는 모토 아래 의욕적으로 시작된 공공디자인의 실험은 서울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고, 바로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러나 그 일련의 실험들을 보다 깊은 생각으로 대하고 관심과 사랑을 가지는 것은 대중의 몫이며, 그 공간에 사랑이 채워질 때 비로소 공공디자인의 틀이 완성된다. 동십자각 지하보도는 지금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지하도를 걸으며 서울의 역사를, 그 역사가 전달하려고 하는 디자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 공간이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로 가득해질 때 공기 중에는 보여지지 않는, 말하여지지 않는 사랑이 가득해질 것이다.

 


내가 그쪽으로 갈께

서로 다른 공간들, 너와 나라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너를 더욱 알고 싶은 욕망, 이 공간에 대한 숨겨진 의미를 읽고 싶은 치열한 탐색과 관심,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통로 위에 흩뿌려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랑이 더 짙게 배어들도록 꾹꾹 발걸음을 눌러 걸으며 동십자각 지하보도를 걷는다. 더 많은 발걸음 소리가 통로 위로 들려올 때 그 과정이 서툴더라도, 그 사랑은 너와 나의 아름다운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될 것이다. 그 첫 시작은 서툴고 모르는 것이 많아도 좋다. 내가 엄마에게 이 메일 보내는 법을 가르치고 몇 개월 뒤 나는 드디어 엄마로부터 간단한 이 메일을 하나 받게 되었다. 엄마가 ‘보내기’ 버튼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 메일은 아주 짧고 간단했다. ‘오늘도 열심히 컴퓨터 배웁니다.’ 엄마는 내가 관심없이 돌아보지 않던 순간에도, 오늘도 어제도 나와 엄마 사이의 있던 통로를 열심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메일을 받은 날 소리 없이 서럽게 울었다. 혼자 걷는 길보다는 함께 걸어가는 길이 더 시끌벅적하고 더 신명나고 더 따뜻한 법이었다. 내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그 통로 위에 엄마의 사랑이 놓여져 있었다. 그건 꼭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공간에는 대개 그러한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은 담겨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나와 우리 모두가 그 이야기에 이렇게 되돌려 말해줄 차례다. “이젠, 내가 그쪽으로 갈께.” 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