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하면 너른 밭에서 경운기를 몰며 구슬땀 흘리는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최근에는 농촌의 밭 대신 도심의 건물 옥상이나 베란다에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도시농부'이지요. 전 세계 도심에 녹색 바람을 일으키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농부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친환경 열풍이 낳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도시농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식품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식품 시장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된 것인데요, 그러나 일반 식품에 비해 가격이 높아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을 위해 화학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은 식재료를 구매하고 싶지만 비싼 가격에 선뜻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은 소비자들 사이에 새로운 문화로 떠오른 것이 바로 '도시농부'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농산물을 재배해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얻으면서 지출 비용도 아끼는 효과를 볼 수 있지요.
도시농부의 텃밭은 주로 집 베란다나 건물 옥상에 꾸려집니다. 소규모 텃밭에서 적은 양의 식재료를 재배하는 '미니멀리즘'이 도시농부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도시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적은 품을 들여 농산물을 재배한다는 점에서 농사를 업으로 삼는 귀농과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건강한 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
건강한 먹거리의 자급자족 욕구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도시농부 문화가 등장하며 가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공동체 텃밭과 치료 텃밭인데요, 이 둘은 일반적인 도시농부 문화와 어떤 점이 다를까요?
집 베란다처럼 개인적인 공간에 1인 텃밭을 조성하는 일반적인 도시농부와 달리 '도시공동체 텃밭'은 건물 옥상에 텃밭을 조성해 여러 명의 도시농부들이 텃밭을 공유합니다. 혼자 밭을 일구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한 팀이 되어 함께 농사를 짓는 형태이지요. 1인 가구가 늘면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다는 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웃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현대인들을 도시공동체 텃밭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텃밭은 도심 속 병원에도 조성되고 있습니다. 국내외 병원에서는 정원 한 켠에 텃밭을 만들어 장기 입원환자들이 직접 농작물을 가꾸도록 하는 '치료 텃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여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자연을 대함으로써 마음을 안정시키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보람으로 삶의 열정을 되찾게 하여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빌딩이 빼곡히 늘어선 도심 한가운데에 조성된 텃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데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 그중에서도 번화가로 손꼽히는 홍대에 위치한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의 박정자 멘토를 만나보았습니다.
유지우
홍대 번화가 중심에 공동체 텃밭이 조성되어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이전부터 텃밭에 관심이 많아 여성환경연대의 생태안내자 과정을 이수했어요. 이후 초등학생 아이들이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학교 텃밭 프로젝트'에 참가했습니다. 아이들이 텃밭을 가꾸며 자신감을 느끼는 모습, 감수성을 회복하는 모습들을 엿보며 텃밭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어요. 학교 텃밭으로 시작해 암환자를 위한 치료 텃밭을 거쳐 지금의 도시 공동체 텃밭까지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문래도시텃밭, 홍대텃밭다리, 대륙텃밭 그리고 얼마 전 시작한 마포텃밭(이름 미정)까지 어느덧 네 번째 도시공동체 텃밭을 꾸리고 있습니다.
유지우
도시공동체 텃밭에서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 외에 다른 프로그램도 진행하나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격주로 농부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작물의 재배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기본으로 재배한 농작물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지도 알려드리고 있어요. 도시농부는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접 먹기 위해 농사를 짓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키우는가?'의 문제만큼 '어떻게 먹는가?'의 문제도 매우 중요하므로 요리수업도 함께 진행합니다.
유지우
사람들이 도시공동체 텃밭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가 가장 큰 부분인 것 같아요. 농작물을 매개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가족 단위, 회사 단위로 오시기도 하지만 혼자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보통 3~4명이 한팀이 되어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혼자 오시는 분들은 서로 쉽게 친해지시라고 비슷한 연령대로 팀을 만들어 드려요. 정규 모임이 없는 날에도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공동체 텃밭은 도시인들에게 일종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내가 직접 가꾸는 공간이니 애착도 생기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지켜보며 의미 있는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있다는 위안도 얻고요.
유지우
도시공동체 텃밭의 농부가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특별한 절차는 없고 텃밭의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됩니다. 홍대텃밭다리는 상반기, 하반기, 1년 단위의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기존에는 언제든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는데 재배하는 농작물에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작년부터 회원제로 전환했습니다. 매월 소정의 회원비를 내면 원하는 농작물의 씨앗부터 흙, 비료 등 농사에 필요한 재료들을 제공해드려요. 농부학교 수업도 들을 수 있고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혼자 오시는 분들도 많으니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초보 도시농부를 위한 가이드
유지우
초보 도시농부를 위해 추천하고 싶은 농작물이 있다면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상추나 시금치 같은 잎 채소를 추천합니다. 물과 햇볕이 넉넉한 환경이라면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 자라서 초보 도시농부들이 키우기 쉬운 농작물이에요. 잎 채소는 씨앗을 뿌려서 키워도 잘 자라지만 씨앗부터 시작하기 부담스러운 분들은 모종으로 첫 농사에 도전해보세요.
유지우
씨앗이나 비료는 어디서 구매할 수 있나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요즘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초보 도시농부들은 농작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씨앗이나 비료를 고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집 주변 화훼단지를 직접 방문해 구매하는 것을 권해드려요. 판매자 분들의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또 지역구청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요즘은 일부 지역구청에서 구민들에게 상자텃밭을 분양해줘요.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나무상자와 씨앗, 흙, 비료 등으로 구성된 패키지 제품이에요. 매년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경 각 지역구청의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분양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이용해보세요.
유지우
농작물을 재배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박정자 / 도시공동체 텃밭 ‘홍대텃밭다리’ 멘토
같은 종류의 농작물을 많이 심기보다 다른 종류의 농작물을 소량씩 심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모종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채소가 자라요. 욕심을 내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심었다가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 여러 종류의 농작물을 조금씩 재배해 다양하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얼마 전 서울시는 2018년까지 모든 가구의 10분 이내 거리에 텃밭을 조성하는 '도시농업 2.0 마스터플랜'을 발표했습니다. 도시 생태계를 회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인데요, 과거 귀농 열풍이 도시농업으로 점차 옮겨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건강한 식재료를 얻는 것은 물론, 이웃과 소통의 장까지 마련해주는 도시농업. 바쁜 생활에 지쳐있는 도시인이라면 올봄 나만의 작은 텃밭을 조성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