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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도로에 흐르는 멜로디, 노래하는 도로를 아시나요?

노래하는도로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방송인 타일러가 미국 중서부 횡단 구간의 특별한 도로를 소개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바로 노래하는 도로였는데요, 차가 지나가면 미국의 국가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이 울려 퍼지지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먼저 노래하는 도로를 만들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국내외 노래하는 도로는 어느 곳에 있는지, 또 어떤 원리로 도로가 노래를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노래하는 도로는 왜 만들어졌을까?


최근 5년간 일어난 국내 고속도로 사망사고 가운데 운전자 과실 사고 비율은 약 90%. 그 중 절반 이상이 졸음운전과 과속운전에 의한 사고인데요, 이는 8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졸음과 과속으로 발생하는 사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대책이 필요했지요. 그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노래하는 도로였습니다.


국내 노래하는 도로

▲그루빙 기법으로 시공한 도로 모습


노래하는 도로는 운전자가 지정된 속도로 주행할 때에만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운전자들은 노래 소리를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정된 속도에 맞춰 운전을 하게 되고 이는 과속 방지로 이어지게 되지요.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 따르면 미국에 노래하는 도로 설치 후 과속 차량 비율이 88%에서 15%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최근 사회경제학의 화두로 떠오른 ‘넛지효과’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넛지효과(Nudge Effect)란?

'슬쩍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넛지에서 비롯한 것으로, 금지와 명령이 아닌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권유로 타인의 바른 선택을 돕는 것을 의미.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의 저서 <넛지(Nudge)>를 통해 알려진 용어이다.


흥미로운 요소로 자연스럽게 운전자들의 감속을 유도하는 노래하는 도로. 과연 그 원리는 무엇일까요? 도로가 어떻게 멜로디를 만들어내는지 도로공학 전문가에게 들어보았습니다.



노래하는 도로의 원리는 무엇일까?


한양대학교 서영찬 교수


서영찬 / 한양대학교 교통·물류공학과 교수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레코드판 플레이어를 떠올리면 쉬운데요, 플레이어에 달린 바늘과 레코드판의 마찰이 만들어낸 주파수로 음악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노래하는 도로에서는 자동차 바퀴가 바늘이고, 도로가 레코드판인 셈이지요. 마찰음은 홈이 있을 때 쉽게 발생하기 때문에 노래하는 도로에는 홈을 만드는 그루빙(Grooving) 기법을 시공합니다.



노래하는 도로 원리


그루빙 기법은 음각 시공과 양각 시공으로 나뉩니다. 음각 시공은 도로를 파서 홈을 만드는 것이며, 양각 시공은 도로 위에 포장재를 덧대어 홈을 만드는 것인데요, 두 가지 중 어떤 기법으로 시공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도로포장재입니다.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도로에는 음각 시공을, 아스팔트 도로에는 양각 시공을 합니다. 아스팔트는 콘크리트에 비해 강성이 약해 홈 주변이 빨리 마모되어 음각 시공을 할 경우 소리가 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지우

단순 마찰음은 소음에 불과한데, 멜로디를 만드는 음정(음의 높낮이)은 어떻게 만드나요?


서영찬 / 한양대학교 교통·물류공학과 교수

음의 높낮이는 ‘홈과 홈 사이의 지면 간격’으로 조절합니다. 홈 하나의 폭은 어떤 음계든 2.4cm로 동일하지만 ‘도’라는 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2.4cm의 홈을 10.6cm 간격을 두고 만들고, ‘레’는 9.5cm 간격을 두고 홈을 내며, ‘미’는 8.4cm 간격으로 홈을 내는 것이지요.


음의 길이는 홈의 개수로 조절합니다. 예를 들어 10.6cm 간격을 둔 홈을 연속으로 여러 개 만들면 ‘도’ 음이 길어지는 방식입니다.


유지우

우리 주변에 노래하는 도로 외에도 그루빙 기법이 쓰인 도로가 있나요?


서영찬 / 한양대학교 교통·물류공학과 교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가까워질 때쯤 '드르륵 드르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차가 흔들리는 현상 역시 그루빙의 일종인 럼블스트립(Rumble strip)에 의한 것입니다. 럼블스트립은 전방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도로에 홈을 파서 차가 진동하게 만든 구간을 뜻합니다. 톨게이트에 도달했으니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죠. 고속도로 갓길에도 럼블스트립이 있습니다. 졸음운전을 하는 운전자는 무의식중에 도로 갓길로 향하는데요, 그때 럼블스트립으로 차에 진동을 줘서 졸음이 깨도록 만듭니다.


노래하는 도로 사례



노래하는 도로는 어디에 있을까?


세계 최초 노래하는 도로는 2003년 일본 훗카이도에 설치되었습니다. 이후 일본 군마현, 와카야마현, 아이치현에 차례로 생겼지요. 그리고 2007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 설치되었는데요, 한국도로공사가 국내에 설치한 노래하는 도로는 총 두 군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판교방면 103.2km 지점과 청원~상주방면 고속도로 68.6km 지점입니다.


노래하는 도로에서 흘러나오는 주제곡도 주목할만합니다. 일본 와카야마현 고속도로는 천문대로 유명한 지역 특성을 살려 '별'을 주제로 한 가요를 택했으며, 우리나라 청원~상주방면 고속도로는 상주시가 자전거의 도시라는 점을 고려해 동요 ‘자전거’를 택했습니다. 노래하는 도로가 졸음운전과 과속운전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지역문화 형성을 도모하도록 유도한 것이죠.


우리나라 노래하는 도로와 일본 노래하는 도로의 차이점은 시공 방법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콘크리트 고속도로에 설치했기 때문에 음각 시공으로 진행했지만, 일본은 아스팔트 일반도로에 설치해 양각 시공으로 진행했습니다.


럼블스트립

▲그루빙 기법으로 시공한 도로 모습 (음각시공)


우리나라에는 정부 정책 차원이 아닌 일반기업에서 만든 노래하는 도로도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진입로 490m 구간에 설치된 노래하는 도로가 그것인데요, 하이원리조트는 과속방지 목적보다는 리조트를 찾는 고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이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연주곡은 동요 ‘산바람 강바람’. 노래가 가장 잘 들리는 주행속도는 40km/h인데요, 하이원리조트 노래하는 도로의 실제 모습을 영상으로 만나볼까요?





노래하는 도로가 남긴 숙제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노래하는 도로는 하이원리조트 진입로가 유일합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설치한 도로는 지난 2010년 모두 폐쇄되었습니다. 도로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가 귀신 소리처럼 흉흉하게 들린다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었지요. 특히 밤이 되면 주민들의 불편함은 커졌는데요, 노래하는 도로가 남긴 숙제는 무엇일까요?

하이원 노래하는 도로

▲그루빙 기법으로 시공한 도로 모습


서영찬 / 한양대학교 교통·물류공학과 교수
도로공학 분야에서는 유지 및 보수가 쉬운 기술을 좋은 기술로 인정합니다. 오래도록 유지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수가 쉬워야 하죠. 그런 측면에서 노래하는 도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성이 강한 콘크리트라고 해도 닳기 마련이고, 음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근 주민들의 민원은 더욱 심해지겠지요. 또한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홈 사이에 얼음이 얼어 도로가 깨질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하는 도로가 가진 장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불쾌한 마찰음이 아닌 유쾌한 노래로 운전자의 졸음을 깨워준다는 점, 그리고 지루한 고속도로에서 작은 이벤트로 잠시나마 웃음을 준다는 점 등인데요, 아쉬운 부분들을 보완해 모두에게 즐거운 노래하는 도로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아쉽게도 한국도로공사 측은 노래하는 도로를 다시 만들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고 밝혔는데요, 미국 중서부 횡단 구간을 시작으로 노래하는 도로가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를 생각해보고, 단점을 극복한 기술 개발로 전국 곳곳에서 신나는 도로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